이 책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봉사단원으로 몽골에서 근무하던 1994년, 한 선교사님으로부터 빌려 읽은 책이다. 당시에는 거의 고립된 사회에서 살던 때라, 이 책 역시 고립감을 주어서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17세기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을 탄압한 시기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선교사를 파송한 로마의 예수회 본부에서는 일본의 가혹한 박해에 굴복해 페레이라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페레이라는 1609년 일본에 잠입해 1633년까지 선교하던 중에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동료와 신자들의 고문에 더 큰 고통을 느껴 배교한다. 가톨릭 선교사인 신부가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소식에 로마 가톨릭 본부는 큰 충격에 빠진다. 

페레이라의 제자 로드리고와 가르페는 직접 현장에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일본행을 결정한다. 마카오에서 만난 일본인 기치지로의 안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가르페는 순교하는 신자들을 보고 달려가다가 목숨을 잃는다. 로드리고 신부는 박해를 피해 도망하던 중에 기치지로의 밀고로 체포된다. 
로드리고는 페레이라를 만난다. 페레이라는 로드이고에게 배교하라고 설득하고, 로드리고는 배교를 거절한다. 로드리고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배교하더라도 여러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는 스승 페레이라가 결국 그 문제로 배교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도 배교하지 않으면 고문당하는 신자들을 구할 수 없다는 고뇌 속에서 결국 성화상(후미에)을 밟는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최악의 경우, 사람은 고민하고 갈등하게 된다. 몽골에서의 처음 갈등은 집집마다 방문해 전도하고 성경공부를 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었을 때 겪었다. 당시 종교 비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비자 취득 목적 외의 활동을 하다가 잡히면 문제가 생겼다. 경찰은 나를 이민청에 고발하여 추방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종교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사역에 대해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당시 나는 몽골어를 쓸 줄 모른다면서, 영어로 ‘fanatical activity’를 하지 않겠다고 썼다. ‘광신적 종교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쓴 것이다. 당시 경찰은 영어를 몰랐기 때문에 ‘각서’를 받았고, 얼마 후 그 경찰은 다른 지역으로 전출되었다. 지금은 그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현지인 목회자가 안정되게 목회하고 있다. 

동판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얼굴을 밟는 로드리고의 발은 통증을 느끼고, 그의 마음은 더욱 처절한 고통과 비애를 느낀다. 그때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라.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라는 음성을 듣는다. 

로드리고는 성화상을 밟고서야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통받고 있었다. “약한 것(배교)이 강한 것(순교)보다 더 괴롭지 않다고 누가 말하겠는가?”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로드리고 신부는 자신이 고통 받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의 제목인 『침묵』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오해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건 하나님은 아무 반응도 없고 그저 우리는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해준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의 삶의 모든 모습에 깊이 관여하신다. 기적을 베풀어 상황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실 때에는 ‘침묵’으로 함께하신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고통과 박해 속에서, 하나님 역시 고통과 박해의 어려움을 같이 겪으신다.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고통의 현장에 주님은 함께하셨다. 초기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과 스데반의 순교에서도 주님은 같이 괴로워하셨고, 죽음 이후 승리의 기쁨을 같이 누리셨다. 

몇 일 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이 무슨 뜻이야?” 
“왜?”
“기숙사 옆 건물에 사는 남자들이 자꾸 담배꽁초를 우리 마당으로 던져”. 
나는 딸에게 답했다.
“그냥 ‘우리는 담배꽁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여. 대항하지 말고 그들의 양심에 맡겨 보자고.”
그 후 그는 담배꽁초를 딸의 숙소 울타리 안에 버리지 않았다. 
딸이 답을 보내 왔다. 
“아하, 이게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이구나.”

예수의 공생애는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이김, 즉 부활하심으로 완성되었다. 

종종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가 아닌가를 두고 고민한다. 대부분의 경우, 내게 이익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뜻이고, 이익이 없고 손해와 고통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라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손해와 이익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 중에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곤 한다. 일상이 평안하면 우리의 의식은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대해 민감하지 못하다.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심지어 예상 못한 고난이 올 때, 우리의 삶은 긴장하고 하나님을 붙잡게 된다. 

몽골의 보로노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30대와 40대가 지나갔다. 1년에 6개월은 영하인 지역이고, 11월부터 3월까지 길이 미끄러운 눈으로 덮인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마을에서의 사역 11년이 내 인생에 최고로 행복한 기간이었다. 한국에서 목회하거나 학교에서 일했다면 그런 만족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100여 킬로미터를 돌아다니는 동안 친구들이 부러웠다. 미국, 영국, 독일 등지로 유학을 떠난 동기들, 한국의 안정된 교회에서 목회하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면 ‘나는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울 때도 많았다. 초원의 언덕을 향해 공을 차면 내려오고 또 차면 또 내려오는, 언덕과의 축구를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때로는 전도하러 들어가려는 집에서 개를 풀어 놓고 나를 쫓아내기도 했다. 예배 중에 돌이나 감자를 던져 교회 유리가 깨지기도 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외롭게 다니는 나를 두렵게 하고 위협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유목민의 심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하나님은 ‘침묵’만 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셨다. 선교사로 사는 것에 대한 감사와 감동을 누리게 하셨다. 

조금씩 모여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이해하게 하셨고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몽골어로 성경을 전하게 하셨고, 몽골인들의 가슴과 마음을 열어 복음을 알아듣게 하셨다. 지금은 ‘공가’와 ‘토야’ 부부 목사가 지역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며 목회하고 있다. 

28년 동안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한 선교지의 삶을 결산해 보았을 때, ‘감사와 은혜’의 열매를 맛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에 들어선 선교사의 여정을 축복으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 편집자 주 -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이하 세기언, 회장 조명환 목사)가 주관한 제6회 신앙도서 독후감 공모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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