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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은 행복이 아닙니다”
곽성환 목사  |  PMI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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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14  0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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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끝에 강아지를 입양해 가족으로 지낸 지 한 달이 되었다. 유기견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서였는지 ‘잘 보살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유독 많았다.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이겨내며 돌봄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앞발을 치켜세우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동작과 간절함을 담은 똘망한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적당한 무게감으로 내 몸을 누르며 다리 사이에서 세상 편하게 자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 받음의 기쁨은 녀석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몫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내 안의 나르시시즘을 다시 깨웠다. “어머, 유기견을 입양했어요?”(난 이런 사람이야), “와우! 벌써 이렇게 적응을 잘해요? 너무 밝아 보여요”(훌륭한 견주니까), “So Cute!”(내 개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립서비스임에도 내 기분은 고조되었고, 그럴수록 산책하는 일, 모르는 사람들과 개를 소재로 대화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녀석이 힘이 넘치고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목줄을 풀어놓는 횟수가 많아졌다. 기분이 흥하게 된 것은 녀석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옷만 입어도 펄쩍펄쩍 뛰며 즐거워했다. 문을 열면 경주마처럼 달려나갔다. 좋아하는 냄새를 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했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얼마 전부터였다. 내가 개를 데리고 나가는 게 아니라 개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 낯선 개를 만나면 반갑다고 짖거나 달려가는데, 상대편 개나 보호자가 반기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공원에서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놀지만, 전에 보이지 않던 습관들이 생겼다. 몸 싸움을 하고 상대를 물기 시작했다. 닭들과 평화롭게 마당을 거닐던 녀석은 닭들에게 돌진했고 기겁한 닭이 도망치면 더 신나서 쫓아갔다. 원하는 것을 더하고 싶다며 버티는 횟수도 늘어났다.

특히 냄새 맡기에 빠지면 불러도 오지 않고 통제되지 않았다. 창밖의 청설모를 보면 몸을 부르르 떨거나 달려가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횟수가 늘었다. 대형견이 아니니므로 심각한 위험이 되지 않으며, 세 살도 되지 않은 녀석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너를 잃어버리고 규칙이 무너지면 분명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때 한 전문가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흥분은 행복이 아닙니다.” 그동안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녀석의 기분이 좋은 것으로 착각했다. 규칙을 무시하고 돌진하는 것을 집중력이 강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것으로 오해했다.

흥분 상태를 통해 두려움과 불안을 잊는 것은 건강한 해결책이 아니다. 흥분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감정이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입장과 공동선이라는 가치를 잊어버리게 한다. 무한한 자기 욕망과 자기 긍정, 자기 의에 빠져들게 한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세상은 흥분한 군중들로 가득해 보인다. 사람들은 흥분 상태에서 용감해지거나 강력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어떤 이들은 흥분 상태의 행동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흥분을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현실 자각 상태로 돌아오면, 우울해지고 불안해진다. 이를 잊기 위해 다시 흥분할 거리를 찾는다. 자극적인 썸네일의 문구나 신문의 헤드라인, 인플루언서가 올린 SNS의 40글자는 흥분을 위한 좋은 영양제이다. 조회수의 증가, 팬덤의 조직화, 상대편의 공격적 반응은 흥분을 강화시키는 촉진제가 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원하는 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는 독재자와 폭군이 되어간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다. 흥분 상태에서 드린 예배를 은혜로웠다고 표현하거나, 흥분 상태에서 영적 전쟁의 아군과 적군을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단번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은 것이다.

몰입은 올바른 방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올바른 방향이라는 가치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덕목이 포함되어 있다. 타인을 배려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넓다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지으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흥분의 발산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순종이다. 무엇보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흥분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진정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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