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면접장인 듯 싶었다. 근엄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면접관이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자네 스킨 로션은 무엇을 쓰나?” 이 질문에 거침없는 대답이 나왔다. “예, 우르오스를 씁니다.” 면접관은 단박, “합격!”이라고 외쳤다. 이어서 “기본에 충실하고 시간을 아끼며 자기관리에 철저한 인재야! 뽑아!”라고 덧붙였다. 이 얘기는 어느 남성 화장품 광고다.

비록 광고 문구이긴 해도 암시하는 교훈이 예사롭지 않게 들려왔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메모하였다가 직원들 앞에서 소개했더니 사뭇 반응이 진지했다. 직장인은 모름지기 기본에 충실하고 시간을 아끼며 자기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사실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 어려운 모범이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내게도 자부하고 싶은 충실한 기본이 있다. 이십 대에 시작한 직장 생활이 육십 대에 들어섰으니 사십 년 동안이나 흔한 감기몸살로 병가를 낸 적이 없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가 나뒹굴었고 기절하여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건강을 과신했던 오만한 허물이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자기 관리는 잘한 편이다. 솔직히 직원 사정이 열악할 때 지각하지 않고 제 때에 서둘러 출근하는 직원들을 보노라면 여간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게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의미는 한 마디로 성실(誠實)하다는 뜻이다. 성실이란 말의 풀이는 ‘정성스럽고 참됨’을 말한다. ‘정성스럽게’ ‘참됨’을 드러내는 ‘의지’가 성실이다. 성실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였다. 무슨 일로 담임 선생님이 결근을 하셨는데 교감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들어오셨다. 일종의 특강이었다. 칠판에 굵은 글씨로 ‘성실(誠實)’이라고 쓰시고는 정성스럽고 거짓이 없음, 이라고 큰소리로 풀어 주셨다. 그리고 성실에 대한 무슨 예화를 들려 주신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실이란 두 글자는 입때껏 내 가슴에 잘 박힌 못처럼 살아 있다. 참으로 값진 교육이었다.

성실은 신(神)의 속성이다. 성경은 유달리 하나님의 성품을 성실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 3:23).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 하니이다”(시편 119:138).

더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양심이라는 본질도 구체화된 성실이라고 생각한다. 성실은 이렇듯 자기 내면을 표면화하는 일체감이다. 인격을 이루는 정체성인 것이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중심 단어는 성실이 되고 있다. 건강하고 근면하며 성실한 사람,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아니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더욱 성실하게 살아갈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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