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은 그라운드호그 데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소도시 펑크서토니에서는 이날 그라운드호그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지 지켜보는 행사를 가진다. 그림자를 보면 겨울이 길어지고, 그림자를 보지 않으면 봄이 일찍 온다고 믿는 이 행사는 1887년부터 독일계 이민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다른 주에서도 이날을 지킨다.

나는 그라운드호그 데이와 같은 즐거운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사는 것에 감사한다. 해외를 여행할 때마다 미국에서 살 수 있음에 늘 감사한다. 그러나 그러한 감사는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

지난 주일 지역신문인 달라스 모닝 뉴스에 복음주의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기사가 실렸다. 휘튼 칼리지 빌리 그래함 센터의 리더인 에드 스테처 박사와 앤드류 맥도날드가 쓴 “지금은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크리스천 내셔널리즘에 관해 논할 시간”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스테처와 맥도날드는 기독교 국가주의를 애국심과 기독 신앙의 혼합주의적 절충이라 묘사한다. 이러한 절충은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섭리적 은혜나 축복을 누리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믿음에 대해 필자들은 비성경적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두 필자는 기독교 국가주의가 “교회 사역에 국가주의 정체성을 통합시킨다. 그렇게 하여 이 국가주의적 비전을 기독 신앙 및 실천을 이해하는 렌즈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 만든다.”라고 덧붙였다.

두 필자는 빌립보서를 언급한다. 바울은 하늘 시민권의 은유로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지상의 어느 나라나 지도자에 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필자는 “로마 시민권은 모든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두 필자는 복음주의자들이 복음 외의 것에 뿌리박은 정체성을 허용했는가를 질문한다. “우리는 조국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에 불복종할 때, 우리는 두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필자는 강조한다.

“성조기로 감싼 예수가 기독교를 대변하지 않는다.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국가와 문화와 주민을 비판한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되 그 사랑에 올바른 애국심을 포함시킬 때, 우리는 국가 위에 하나님을 두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복음은 분명해지고, 국가는 성경의 진리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되며, 국가는 더 나은 곳이 된다.”라고 필자들은 글을 마무리한다.

얼마 전 "국가는 지정학적인 실체일 뿐이며, 크리스천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다. 나는 기독교 국가주의자가 아니라 기독교 애국자"라고 표명했다. 고로 지상의 나라는 기독교인의 나라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왜 기독교 국가주의가 그 많은 복음주의자에게 유혹이 되는가? 한 가지 이유는 미국이 실제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대양과 숲과 사막은 국외의 침입자들을 막아 주었다. 미 대륙에는 자원이 풍부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우리의 건국 이데올로기가 아직 모든 미국인을 충족시킨 것은 아니지만, 평등에의 헌신과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에 기여한 기업가적 전진에 동기부여를 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에서 미국인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우월하고 미국은 다른 나라를 섬길 수 없다는 목적으로 선택받았다는 신념으로 가는 단계일 뿐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러한 신념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쿠바와 중국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의 희생적인 열정을 볼 수 있다면, 다수 미국인의 신앙이 취약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슬림에서 크리스천으로 개종한 이들이나 유럽의 가정교회들을 방문하면, 미국은 세계에 영적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인들은 나라의 자유를 위해 일하고 죽은 이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국심은 국민에게 헌신하는 마음이다. 참전용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들의 군 복무에 감사한다. “이 나라를 위해 죽어도 좋은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그들은 응답했다.

미국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거짓 주장을 하지 말고 미국인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인도하자. 모든 미국인에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는 말씀을 들려 주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는 계명대로 사랑하자.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국민에게 진정한 깨달음을 주시는 그날을 위해 기도하고 일하자.

마크 배터슨의 『속삭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법』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휘튼 칼리지 학생들이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집의 마루에는 웨슬리가 기도하면서 무릎 꿇은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돌아가려고 버스에 올랐는데, 한 학생이 보이질 않는 거였다. 인솔 교수는 웨슬리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무릎의 흔적 위에 무릎을 꿇고 ”오 주님, 다시 하세요!“라고 기도하는 젊은 빌리 그래함을 발견했다. 

오늘 그의 기도를 당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 편집자 주 - 짐 데니슨 목사의 2월 2일 칼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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