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많은 상처들을 입게 된다. 어느 날 몸에 난 상처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려서부터 부주의한 탓에 잘 넘어지고 약골이었던 내게는 숱한 넘어짐의 흔적들(marks)이 있었다. 지금은 콩알만 해졌지만, 그때에는 수개월 동안 치료받고, 나중까지 고생할까봐 염려했던 상처들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물론 수십 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모두 아물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만약 교회에 다섯 번 이혼한 분이 새롭게 등록하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당장 몇 가지 편견을 갖고 대하지 않을까? 성도들은 어떻게 대할까? 이분을 사랑으로 대해 줄 소그룹을 안내해 드려야 하는데, 있을까? 이분은 우리 교회에서 잘 적응하며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들은 상처가 나서 아픈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 아니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곳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리스도인은 상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상처에 열광한다. 예수님의 손과 발의 못자국이라는 상처, 가시 면류관을 쓰신 머리의 상처, 물과 피를 쏟으신 몸의 상처,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에 절규하시는 영혼의 상처를 열광적으로 노래하고, 사순절 기간 동안 깊이 묵상하면서 그 안에 있는 영광과 능력에 감사한다. 그렇다! 예수님께는 많은 상처들이 있고, 그것은 예수님께 영광이 되었다.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상처 입은 어린양 예수님!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처에도 열광한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허물로 인해 입은 상처들을 예수님이 낫게 해주셨다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자연히 상처를 가진 자들이고, 그 상처가 이제는 더 이상 아픔이 되지 않았음을 힘있게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 상처로 인해 현재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과거의 상처가 우리에게는 자랑거리, 즉 영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가시적인 교회를 이루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입은 상처들에도 열광한다. 그들의 상처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대개 상처를 싸매기보다 드러내어 판단하고,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벽을 세운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 판단하는 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일부러 아프게 만지는 것과 같이 상대방에게 아픔을 준다. 그래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를 찾았다가 상처를 더 깊게 받기도 하고, 그것을 알기에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 종종 믿음이 좋은 분들도 상처 때문에 교회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기도 한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아직 영광이 아닌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래 되어 아문 상처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져도 아프지 않기에 그런 상처들은 드러내기가 쉽지만,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다른 사람들이 만지면 아프기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처는 감추어도 보여질 수밖에 없고, 설사 감춘다 하여도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금세 알아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분들은 더 깊은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교회를 기피한다. 교회는 상처받은 분들이 상처를 치유 받는 곳인데, 이 시대의 교회는 상처받은 분들이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곳이 되거나 상처받은 분들이 피해야 할 곳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영적인 갭(gap)을 발견한다. 우리가 가진 진리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질고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잘 이해하시고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죄와 연약함으로 상처 입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치유를 받아 감사하며 찬양하고 예배하는 곳을 교회라고 부른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인 곳이 교회이기에 상처받은 자들이 교회에서 치유받은 자들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너무 잘 알기는 하는데, 나부터 잘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작은 마음으로 결심을 해본다. 상처 입은 자들과의 교제 속에서 아물어 아프지 않은 흔적들(marks)만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그들을 정죄하지 말고, 넘어져 상처 입은 아이에게 딱딱해서 쓸모없는 연고를 던져 주듯이 성경과 예수님이 답이라고 무심하게 ‘죽은 답’만 외치지 말아야겠다고. 아픈 상처를 예수님의 상처로부터 흐르는 보혈로 조심스럽게 만져 주며, 내 아픈 상처들도 함께 나누겠다고. 

나도 아직 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기에.....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죄인인 것을 더욱 자각하기에...... 감추고 싶은 상처들, 내보이기 부끄러운 상처들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기에...... 상처를 입은 분들이 교회에서 치유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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