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 가톨릭 교구, 낙태아 세포 사용을 이유로 존슨앤존슨 백신 접종 거부

 

모더나 백신 개발을 위해 1백만 달러를 기증했던 싱어송라이터 돌리 파튼(74세)이 이번 주에 백신을 맞았다. 접종 전에 그녀는 히트송 ‘졸린’의 가사를 바꾸어 녹음했다. “백신, 백신, 백신, 부탁해요. 주저하지 말아요.”

또 다른 뉴스에서, 새로 승인된 존슨앤존슨 1회용 백신이 “절대적인” 게임 체인저라고 매사추세츠 제너럴 병원의 의사가 전했다. “세 가지 백신의 승인으로 미국인 전부가 접종할 수 있게 되었다.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뉴올리언스의 대교구는 “윤리적 타협”이라 부르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존슨앤존슨 백신 접종을 하지 말라면서,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낙태아의 세포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수개월 전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개발되었을 때, 백신 자체에 포함된 것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실험 과정에서 HEK293T 태아 세포주의 세포를 사용했다. 이 조직은 1970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추출되었는데, 본래의 자료가 사라져 선택적 낙태인지 자연 유산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교구는 지금 존슨앤존슨의 자회사인 얀센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낙태된 세포주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모더나 혹은 화이자 백신 접종을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몇몇 기독교 지도자들도 지난해 4월 미 식품의약국에 존슨앤존슨이 “낙태아에서 추출한 오래된 세포주를 사용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는 경고 서한을 보냈다.

존슨앤존슨은 “"우리 백신에는 태아 조직이 없으며 감기 바이러스인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삼는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윤리학자들은 문제의 세포들이 클론(복제개체)이지 태아 조직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윤리학자는 현재 미국인 대부분이 백신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서, “이런 식의 도덕적 위협으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수많은 윤리 신학자들은 취약한 사회 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으므로, 가톨릭 신자들이 존슨앤존슨 백신 접종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례로 노트르담 대학 총장은 “노트르담 공동체는 캠퍼스 안팎에서 팩데믹에 맞서기 위해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일회용 존슨앤존슨 백신은 연령을 비롯해 주 정부가 정한 자격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제공될 것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존슨앤존슨 백신은 미국의 모든 성인이 접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에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뉴올리언스 대교구는 낙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존슨앤존슨 접종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낙태아 세포 이용에 반대하다가 누군가가 목숨을 잃게 된다면? 이미 죽은 이들과 아직 살아 있는 이들 중 누구의 생명이 우선인가?

존슨앤존슨이 어느 정도 낙태와 관련이 있는지를 놓고 신학자들의 의견이 나뉜 것처럼 보인다. 백신이 낙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누군가의 목숨을 살려냄으로써 백신이 낙태로 잃은 목숨을 구원하게 되는가에 대해 질문해야 할 것이다. 한 환자가 살해된 피해자로부터 심장 이식을 받는 경우, 환자를 기증자의 죽음에 연루시키는 일은 없다.

만일 존슨앤존슨 백신을 맞게 된다면 주치의와 상담하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지혜를 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지난 수년 동안 신약에서 가장 좋아하는 교회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베뢰아.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그 결과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v.12).

점점 더 세속화되고 기독교 도덕에 반대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베뢰아인을 본받아야 한다. 언론은 당파적이라며 불신되고, 취소 문화는 위험한 “문화 혁명”으로 여겨진다. 최근 여러 크리스천 리더들의 도덕적 실패로 인해 믿을 사람이 없다는 탄식까지 나온다.

답은 여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거한다”는 말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성경이라는 렌즈로 본다는 말이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경적 순종을 하면 우리가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우리가 고통을 겪을지라도 주님이 주신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셨다. 베뢰아인처럼 신앙적 신실함을 가진 우리는 미래를 위해 나무를 심을 것이며, 장차 올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목사의 3월 4일 칼럼 일부 번역)

참고로, 코로나19로 사회 활동이 중단되면서 취소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으며 취소 문화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취소’라는 단어가 영화 개봉, 콘서트, 스포츠 경기 등의 행사뿐 아니라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수가 문화적으로 선호하는 생각을 특정인이 반대하면, 다수는 그 사람을 취소해 버린다. 그 특정인이 음악가라면 콘서트를 거부하고, 운동선수라면 그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영상을 SNS에 올린다. 다수의 생각을 반대한 사람을 사회적 죄인으로 만들어 공개적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취소 문화에서는 단 하나의 잘못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낙인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행동만 취소(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그의 정체성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수치스러운 존재, 취소되어야 할 대상으로 만들기에 취소 문화는 위험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취소된 자를 사랑하셨다. 사랑과 용서와 은혜로 취소된 자들을 품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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