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과 미소가 지치고 고단한 그들의 삶에 작은 선물이 된다면......"

 

가죽옷 수선에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수선 재료 가게에 들렀다. 찾는 물건이 안 보여 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한쪽 구석을 가리키고 가서 찾아 보라며 성가신 표정을 지었다.  물건을 못 찾아 다시 도움을 요청했더니, 거기 없으면 없는 거라고 성의없이 대꾸하며 돌아섰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같이 작은 금액의 손님은 귀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속상한 마음을 품고 그냥 나왔다. 괜시리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이런 일을 이곳에서만 당하는 건 아니다. 어딜 가나 소액 거래자는 돈을 쓰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때론 물건을 팔면서도 갑질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출세하고, 돈 많이 벌려 하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 살고, 명품 들고 다니며 대접받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시 당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항상 누렇게 변색된 셔츠 서너 장을 가져오는 제리는 흑인 특유의 낙천적인 제스처로 소란스럽게 들어와서는 수다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몇 년 전 부인을 잃고 혼자 암과 싸우고 있지만,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다. 한 번 시작된 수다는 3~40분을 족히 채운다. 

처음 제리가 왔을 때에는 금방 가겠거니 하고 일하면서 수다에 응했는데, 친해지면서 대화 상대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리가 오면 무료 카페를 차리고 커피를 대접한다. 대화 중간중간 뒤에서 일하던 남편이 한 마디씩 수다를 거들면 어떤 때에는 한 시간을 머물다 가기도 한다. 

세탁소에서 제일 반갑지 않은 손님은 셔츠만 가져오는 손님이다. 셔츠는 이익이 거의 남지 않기 때문이다. 손질에 비해 서비스값이 너무 저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탁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아주 작은 구멍가게였어도 나름대로의 경영철학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돈보다는 “사람을 벌기 위한” 경영을 하기로 했다.

가끔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손님들에게 그냥 옷을 내주기도 했고, 돈이 없어 철 지나도록 옷을 찾지 못하는 손님들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제리는 우리가 그렇게 벌어들인 손님 중 한 분이다. 비록 돈 안 되는 셔츠 서너 장 가져오는 분이지만, 그분의 수다 속에는 진리가 있다. 제리의 삶은 장소에 중독된 예배가 아니라, 어디서나 자유롭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해마다 봄이면 각 사업장에 소방 검열이 나온다. 소화기도 일년에 한 번씩 재충전해야 하는데 가게를 비우기 힘든 우리는 제리의 도움을 받곤 한다. 제리는 우리 가게뿐 아니라 빌딩에 있는 가게들의 소화기를 수거해서, 한 시간 거리의 충전소에서 충전해 가져다 주는 수고를 기쁨으로 하고 있다.

제리에게 늘 기쁨으로 수고하는 이유를 물으면,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거라” 배웠다며, 예수님은 “나를 섬기라”고 말씀하신 적 없고, 다만 “나를 따르라” 하셨다면서, 자신은 그저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제리는 늘 허름한 차림으로 다니는 자신을 대접해 주는 우리가 되려 고맙다고 했다.

제리는 기도 속에서 흑암 중에 있는 백성들을 첫 사역지로 삼으셨던 그리스도의 심장과 땅에서 부르짖는 약자들의 탄식 소리를 기도로 들으시는 창조주의 마음을 자주 만난다면서,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오늘도 작은 선물의 삶을 시작한다고 했다.

제리가 남기고 간 여운을 안고 우리 부부도 다짐했다. 가난하고 돈 안 되는 손님에게 미소를 선물하고, 우리의 일터에서만큼은 최고의 대접을 해드릴 수 있게 마음을 활짝 열기로 했다. 보잘것없는 우리의 작은 친절과 미소가 지치고 고단한 그들의 삶에 작은 선물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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