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들리는 잔잔한 빗소리에서는 엄마의 손길이 느껴진다. 세월을 돌아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어도 그리워지는 우리 엄마의 도탑고도 사랑스러운 손길.

며칠 전, 내 속에 잔뜩 난제들을 안고, 주님 앞에 엎드려 응답을 기다리다가 지쳤다. 행하실 일을 믿고 온 힘을 다해서 기도해야 할진데 힘이 빠져갔다. "어디에 계신 가요! 주님!" 떼를 쓰다가 주님 옆에서 멀어진 듯한 자신. 주님의 기쁨이 되지 못한 부분을 점검하느라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곤 새벽녘 잠결에 들려온 다정한 빗소리는 그나마 깊은 잠에 도움을 주었다.

자박거리는 빗소리의 편안함을 느끼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던 나는 점점 의식이 깨어났는지 발딱 일어나고 말았다. 며칠 전 분갈이를 해 놓았던 다육이 화분들을 처마 밑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오른 때문이었다.

거실로 뛰어나오는 짧은 순간에 생각이 겹쳐 지나갔다.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난 몸이 빗물을 잔뜩 받아 무거워진 화분을 옮기려다가 혹시 어느 관절이나 근육이 삐걱하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빗물에 잠기게 할 수는 없었다.

불을 켜고 뒤란으로 나갔다. 난 깜짝 놀랐다. 비가 언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지붕에서 물받이를 타고 내려온 물은 뒤란의 콘크리트 위에 어둡고 제법 긴 물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화분들이 놓인 주변의 보오얀 바닥이 도드라져 보였던 까닭이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깨지나 않았는지 점검하듯, 눈을 깜박거리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분명 지붕 위에서는 계속 빗소리가 들려오는데, 마치 우산 밑처럼 빗물은 고사하고 물방울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물이 고이지 않은 가벼운 화분들을 처마 밑으로 옮기고 들어왔다.

문을 여닫는 소란스러움에 잠을 깬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비가 화분 근처에 내리지 않았던 신기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말을 믿지 못하고, 불가능하다며 한심하게 여기는 듯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남편과 같이 뜰로 나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불과 5분 전까지 물기 하나 없던 화분 놓였던 근처의 콘크리트에 쏟아져 내린 빗방울들이 보오얀 부분을 없애 버렸다. 남편이 목소리를 높였다. 새벽부터 착각을 했다고.

난 그의 손을 잡아 끌어 조금 전 옮긴 화분 옆으로 가서 잎들을 만져보게 했다. 화분에 물은 고사하고 물방울 하나 없는 잎들을 보고는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 내 말을 믿지 못했음을 사과하더니 확신에 찬 한 마디를 했다.

“주님의 손길이야!!!” 

둔한 내 머릿속에도 그때야 선명한 해답이 왔다.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 맞아!!! ‘주님 어디 계신가요?’ 밤 늦게까지 외쳐내던 나에게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 “나 여기 있다” 는 주님의 음성!!! 주님께 떼만 쓰는 한심한 철부지 성도인데도 소망 잃지 말라고 그 새벽에 세밀하신 사랑을 펼쳐 주셨다.

그날 새벽, 처마 밑으로 옮기지 못한 화분들을 통해서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사사기 6:37).
기드온의 양털 시험 같은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이 분명했다.

사랑의 주님께서 섬세하신 손길로 하실 많은 일들을 이해하려고도, 머뭇거리지도, 의심도 하지 말아야겠다. 그대로 받자. 선물 곧 은혜이니까.

온 세상을 절망으로 덮은 길고 긴 터널의 펜데믹, 이 상황에서도 주인이신 나의 하나님께서는 묵묵히 일하고 계신다. 그 성실하심에 주목하리라. 자녀인 난 그 성실함 닮아가야겠다. 여러 가지를 다짐하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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