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펙 지음 |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2007)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이란 부제가 붙은 『거짓의 사람들』에서 저자는 악을 반드시 치유해야 하는 정신과적 질병으로 분류한다.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 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개인 상담, 귀신 들림과 축사, 집단 악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악“의 민낯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증상들은 무엇인지,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악을 치료하고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지를 낱낱이 설명한다.

이 책은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든데 계속 읽기도 편치 않다. 권선징악의 동화나 영화와 같은 픽션의 세계가 아닌 나와 이웃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을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악‘이라는 잣대를 섣불리 타인에게 들이대지 말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권고한다.

또한 저자는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서 악을 과학적으로 질병으로 분류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만이 궁극적으로 악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악은 사랑에 의해서만 정복될 수 있다. 악을 파괴하여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악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거의 하나님 같은 긍휼의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떠올리게 하는 자발적 희생을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악을 정복하는 유일하고 궁극적인 방법은 그 악이 인생을 자발적으로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인간 안에서 그냥 질식당해 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악의 치유는 자발적 희생이 요구된다. 치유자 개인은 자신의 영혼이 전투장이 되도록 허락해야 한다. 그는 희생적으로 악을 흡수해야 한다. 결코 배반하지 않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피해자가 되어 배반자 대신 죽임을 당하게 되면 법률은 효력을 잃고 죽음마저도 방향을 반대로 돌릴 것이다.

선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악이 자기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수 있고 그래서 자기가 부서지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서진 것도 죽임을 당한 것도 결코 무릎을 꿇은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세상의 세력 균형에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스캇 펙(1936~2005)은 사상가, 정신과 의사, 신학자, 베스트셀러 작가, 연사였다. 하버드대학(B.A.)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M.D.)에서 수학한 후, 10여 년간 육군 군의관으로 일했다. 1978년, 마흔두 살에 쓴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사랑, 전통적 가치, 영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 ‘심리학과 영성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며 이후 『뉴욕타임스』의 최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할 정도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불교도로서 이 책을 집필한 이후, 저자는 공개적으로 크리스천으로서의 개종을 선언하고 인간 심리와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지향하는 글쓰기에 매진했다.

평생 ‘자기 훈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그 때문에 진정한 자기계발서의 장르를 구축한 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다룬 주제를 더 발전시킨 강연 모음집 『끝나지 않은 여행』, 첫 출간 이후 20여 년간 더 깊어진 통찰과 통합적 시각을 보여 주는 『그리고 저 너머에』 등이 있다.

(본문 일부)

“악성 나르시시즘의 특징은 복종할 줄 모르는 자기 의지에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 양심의 요구에 스스로를 굴복시킨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죄책감과 자기 의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때 사라져야 하는 것은 언제나 죄책감이고 이기고 마는 것은 언제나 자기 의지다.”

“생소한 정신의학 용어 ‘악성 나르시시즘’을 흔히 우리는 ‘교만’이라 부른다. 교만은 악의 뿌리다. 교만이 진짜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내적 죄성과 불완전함을 터무니없이 부정하는 그런 교만, 날마다 뻔히 보이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려 주어도 그것을 극구 부인하고 심지어 반격까지 하려 드는, 그런 파렴치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이다.”

“악한 사람들은 투사와 희생양 찾기(책임 전가)를 통하여 자신들의 고통을 남에게 떠넘김으로써 스스로 죄책감의 고통을 거부한다. 죄책감은 자신의 죄, 부적절성, 불완전성을 일깨워 주는 고통스러운 인식인 까닭에서다. 이로써 그들 자신은 고통이 없을지 몰라도 대신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들은 고통 유발자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기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병든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어낸다.”

“악이란 언제나 거짓과 관계를 맞고 있다. 상호관계를 악으로 만드는 요소는 바로 그 관계가 거짓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악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동시에 악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르시시즘 일변도의 생각을 지닌 그들에게는 남에 대한 공감 역량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것 같다.”

“사탄의 위협은 공허하다. 그것들은 다 거짓말이다. 사탄이 갖는 힘은 거짓을 믿는 인간의 신념을 통해 나타난다. 나는 사탄을 ‘현실로 존재하는 비현실의 영’이라고 정의한다. 악의 영은 비현실의 영이지만, 그러나 염연히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탄은 정말 존재한다.”

“사탄의 거짓말 중 백미는 인간의 마음에 자신의 현존성을 감쪽같이 숨겨 버리는 일이다. 사탄은 그 점에서 전폭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사탄에게 이토록 실제적인 힘이 있지만 더불어 뻔히 드러나는 약점도 있는데, 바로 사탄을 하늘에서 추방당하게 했던 약점이다. 사탄에게 특출난 교만과 나르시시즘이 없었다면 우린 아마 끝까지 사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탄은 교만이 그 지혜보다 앞선다. 그래서 이 속임수의 영은 또한 자랑의 영이기도 하다.

사탄은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때문에 사랑이라는 현상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가 전혀 없다. 그것은 사랑을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거나 흉내 낼 대상으로 볼 뿐 아예 사랑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희생이라는 개념은 금시초문이다. 또한 사탄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자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자신을 속이고 싶어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은폐는 거대 집단 차원의 거짓이다. 거짓은 악의 증상인 동시에 악의 원인이다. 모든 거짓말이 다 그렇듯이 은폐의 첫 번째 동기는 두려움이다. 어찌 보면 악은 일종의 미성숙이라고 할 수 있다. 미성숙한 사람은 성숙한 사람보다 악을 저지르기 쉽다.”

“집단 응집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나르시시즘일 것이다. 집단 나르시시즘의 실제적이고도 보편적인 유형은 ‘적 만들기’ 또는 ‘비회원에 대한 적대감’이라 할 수 있다. 집단은 파벌이 된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열등하거나 악하거나 아니면 둘 다로 경시된다. 어느 집단이 이미 기존의 적이 없다면 곧 그 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집단 응집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의 적에 대하여 집단의 증오와 적개심을 계속 불붙여 주는 것이다. 집단 바깥의 결함과 ‘죄’들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집단 안의 결함들을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이런 나르시시즘의 이용은 악한 것일 수 있다. 악한 개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이라면 누구든 무엇이든 비난하고 파괴하게 함으로써 자기 성찰과 죄책감을 피하듯이 집단에서도 나르시시즘적인 행동이 일어난다. 게다가 실패한 집단이 가장 악해질 수 있다.”

“우리 인간의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을 전체 인류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는 일이다. 또 하나 우리는 악이란 살인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떠올릴 필요가 있다. evil이란 live의 철자를 거꾸로 써놓은 것이라고 했다. 인류에게 모든 종에게 다 있는 (살상) 본능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학습되는 개인적 선택이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자유롭다. 심지어 배운 것이나 사회가 정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 우리에게 이토록 거대한 자유가 있기 때문에 자주 그것을 남용하며, 다른 열등한 동물에 비해 인간 행동이 자주 본래의 궤도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멀고 먼 나라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동족인 인간을 대놓고 대량 살상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이렇듯 인간의 살상은 선택의 문제이다. 불필요한 죽임과 비도덕적인 죽임을 불러일으키는 한 가지 분명한 요인은 나르시시즘이다. 그 증거로 우리는 우리와 닮은 사람보다 우리와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경향이 훨씬 더 많다. 채식주의자는 동물 형태의 생명을 죽이는 것에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식물 형태의 생명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와 똑같은 원리가 살인에도 적용된다. 백인은 다른 백인을 죽일 때보다 흑인, 인디언, 아시아인을 죽일 때 가책을 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어떤 활동도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이 성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선과 악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곳도 바로 개인의 고독한 마음이요 영혼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포함한 집단 악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개인을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의 과정을 통해서이다.”

“성인이란, 바로 그 자신이 된 사람이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을 다르게 빚으신다. 그래서 마침내 이 육체의 진흙이 다 벗겨지는 날, 하나님의 빛은 각자의 영혼을 정말 아름답고 생기 있는, 전혀 새로운 빛으로 비추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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