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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래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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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6  0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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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도록 성가대를 지휘했다. 그런데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작은 교회에서는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성가대를 지휘할 수 있다. 그러나 큰 교회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성가대 지휘자는 물론 반주자도 모두 전공자들이다. 지휘자와 반주자뿐만 아니라 성가대원들이 모두 성악을 전공한 전공자들로만 이루어진 교회도 있다. 그런데 전공자들이 드리는 찬양이 정말 가장 좋은 찬양인가.

대답하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먼저 들여다보라. 대부분의 사람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를 외부로부터 영입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한 교회에서 이십 년 동안 성가대 지휘를 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와 교단이 다른 신대원에 입학한 후 나는 다니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내 후임 성가대 지휘자는 서울대 음대를 나온 전공자였다. 전공자 정도가 아니라 음대의 학과장이었다. 몇 년 후 다니던 교회 행사에 가게 되었다. 아는 장로님 옆에 앉았다. 성가대가 특송을 하고 있는데 장로님이 내게 귓속말을 했다. 최 집사님이 지휘할 때의 성가대가 지금 성가대보다 훨씬 더 잘하고 은혜로웠다고 하셨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 전공자가 지휘를 시작한 그 자리는 계속해서 전공자들, 그것도 음대 교수들이 맡게 되었다. 음대 교수들의 전공에 따라 성가대는 조금씩 달라졌고 세련되어졌다. 하지만 나는 전공자들이 지휘하는 그 성가대가 비전공자인 내가 지휘할 때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가 전공자가 아닌 성가대를 뛰어난 전공자가 맡는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전문 지식이 오히려 성가대의 찬양을 무의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 교회를 떠나서도 성가대를 지휘했다. 다른 교단의 더 큰 교회에서였다. 그 교회는 내게 엉터리 성가대를 맡겼다. 대원의 수는 사십 명이 훨씬 넘었지만 남자 대원은 단 두 명이었고 여자대원 가운데 알토 파트는 단 두 명이었다. 그야말로 은혜로 하는 성가대였다.

그러나 대예배 성가대는 달랐다. 지휘자는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전공자였고 반주자도 내가 맡은 성가대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파트별로 솔리스트들도 있었고 대원수도 훨씬 더 많았다. 그 성가대의 대원이 되려면 오디션을 거쳐야 했다. 오디션을 거쳐 대원이 된 후에도 자주 틀리는 대원은 퇴출시켰다.

일 년 정도 지난 후, 교인들은 내가 지휘하는 성가대의 찬양이 더 은혜롭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가대를 운영하는 방식이 달랐다.

대예배 성가대 지휘자는 전공자답게 대원들을 고르고 잘랐다. 그러나 비전공자 지휘자인 나는 누구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사람이면 대원이 될 수 있게 했다. 그중에는 악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예 음치인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악보 읽는 법을 가르쳤고, 음치인 사람을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여겼다.

우리 성가대의 찬양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음치인 사람들에게 한 가지 부탁만 했다. 비겁하게 연습할 때 입 다물고 있다가 찬양할 때 큰 소리를 내지 말고, 연습할 때 큰 소리를 내고 찬양할 때 자신 없으면 소리를 안 내도 좋다는 것이었다. 우리 성가대에서는 가장 약한 지체가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 우리 성가대가 마침내 대예배 성가대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각종 교회 행사에서 두 번 이상 특송을 해야 하는 경우에 우리 성가대가 서게 되었다. 전에는 모두 대예배 성가대가 하던 일이었다.

그러니까 두 성가대가 각기 특색 있는 찬양을 하게 된 것이다. 솔리스트들이 없는 우리 성가대가 대예배 성가대보다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은혜롭게 들린다는 측면에서는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떤 분들은 실제로 우리 성가대가 대예배 성가대보다 노래도 더 잘한다고 말해 주기도 했다.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노래를 잘하고 음악적으로 세련된 성가대가 좋은 성가대인가.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듣기 전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성가대는 어떤 성가대인가를 생각해 보시라.

지금은 성가대를 지휘하지 않지만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좋은 성가대는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는 성가대가 아니라 새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이다. “새 노래로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땅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시편 기자가 말하는 새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의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일종의 탄식이자 감탄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새 노래는 부르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은 즐거워하고, 땅은 기뻐 외치며,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도 다 크게 외쳐라. 들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도 다 기뻐하며 뛰어라. 그러면 숲속의 나무들도 모두 즐거이 노래할 것이다.”

찬양은 인간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온 피조 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한다. 찬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 자체가 찬양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어디인가. 하나님 나라이다.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그때 우리 속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가 바로 새 노래이다. 새 노래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아는 노래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성가나 찬양이 아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을 알게 된 하나님의 백성의 삶 그 자체이다. 그래서 나는 찬양과 예배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금요일이라고 부르는 오늘, 찬양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새 노래야말로 우리 신앙의 시금석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그런 새 노래가 있는가를, 그런 새 노래를 부르는가를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전공자가 지휘하고 전공자들이 부르는 찬양은 아름다운 찬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보심과 공급하심에 감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체할 수 없어 외치게 되는 기쁨의 노래가 바로 새 노래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불러야 할 찬양이다. 그런 찬양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참된 만족과 즐거움이다.

나는 스물다섯 번의 부활절 칸타타를 지휘했다. 은혜로운 찬양을 불렀다. 나는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또 연주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우리의 칸타타를 듣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이 은혜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내겐 새로운 기회가 부여되었다. 새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새 노래를 부르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나는 새로운 지휘자가 되고 싶다. 예전처럼 앞에서 이끄는 지휘자가 아니라, 반석(밟히는 바닥)인 지휘자이다. 새 노래로 부활을 노래하는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이루자는 것이다.

“주님이 오실 것이니,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니, 주님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뭇 백성을 다스리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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