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적 분별을 위한 개인들의 서약과 자세

아, 성경 그리고 분별 (29)

공동체적 분별은 결국 개인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다. 예수회의 분별력 스승인 토마스 그린 신부 역시 분별하는 공동체는 분별하는 개인이 만든다고 말한다. 그린 신부는 각 개인이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의 성숙한 신앙을 가졌다면 공동의 분별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그래서 그의 분별의 초점은 늘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 따라서 어떤 개인들이 모이느냐에 따라 공동체적 분별의 성패가 갈린다. 다시 말해 참가자 개인의 신앙적 성숙이 없고, 참가자 전원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신학적/신앙적 고백이 없으면, 이런 공동체적인 분별은 도리어 바울이 가장 두려워했던, 교회를 갈라놓는 위험한 무기로 전락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감독 혹은 장로의 관리감독하에 운영되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과 회중 중심의 메노나이트 교인들이 함께 모여 공동의 분별을 한다면 일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의 권위를 리더에게 두는가, 회중에게 두는가는 분별할 때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가치다. 분별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내가 출석하는 캐나다의 메노나이트 교회는 성서적인 해석에 대한 충돌이 일어날 때 예수님 말씀을 우선하도록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갈등의 해결 방법’에 대한 합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전에 언급한 퀘이커의 공동 분별에선 갈등이 표출되었을 때 ‘침묵 명령’이라는 기제가 사용된다. 누군가의 말이 격해지거나 감정적 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으면, 참석자 누구나‘모두 침묵하기’를 요청할 수 있다. ‘침묵’의 요청이 있으면, 모든 참석자들은 바로 침묵의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충분히 시간이 흐르고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다시 회의를 재개할 수 있다. 이들은 결코 싸우지 않는다. ‘입 닥치고는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안다.

다시 말해, 크게는 신학적인 공감대의 형성에서부터 작게는 문제 발생시 해결하는 구체적인 원칙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공동체적인 합의와 인정이 선행되어야만 공동의 분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공동의 분별을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어느 날 마을회관에 모여 술 한 잔 하고 의기투합해서 쿵짝쿵짝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해 충분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분별을 위해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식이나 양심의 성찰을 일상화해서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하듯이, 공동의 분별 과정을 실시하길 원한다면, ‘무엇을 의논할까’라는 기술적인 생각보다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나눠야 한다(앞에서 다룬 내용들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 16세기 초 재세례파 선조들이 그랬듯이, ‘공동의 신앙선언이나 고백’들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가 믿는 첫째, 둘째, 셋째...가 세워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각자의 믿음이 확인되고, 강화되고, 공동체적으로 성숙해진다. 소위 공동체적인 일체감이 언어 사용과 가치체계를 세우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드디어 각 개인이 공동체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것이며,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그래야 분별에 참가하는 각 개인이 공동체의 결정에, 그것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든 어떠하든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 그린 신부는 공동 분별의 대가인 존 캐럴 푸트렐(John Carroll Futrell) 신부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체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공동 분별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는 것에 따라 살기로 먼저 진실되게 헌신해야 한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실행하기로 헌신되어 있어야 한다. 이처럼 필수적인 이그나티우스식 ‘영적인 자유함’이 결여되면 함께 분별하는 일은 의미를 잃는다.”

현재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 총회의 리더인 데이비드 보샤트(David Boshart)는 2011년, 미국 북서부(Central Plains) 메노나이트 연례총회에서 발표한 「분리의 시대에 연합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Becoming a United Church in a World of Division: (A Biblical View of Christian Unity)」라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동체적인 분별 과정에서 공동체가 분리되지 않고 연합하려면 모든 구성원의 공동의 약속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덟 가지 사항에 대한 합의를 요구했다. 인용해 본다.

첫째, 우리는 예수의 주권 아래 가능한 수단 안에서 최대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서약한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의 몸된 자들로서 예수가 보여 주신 화해의 말씀을 나누고, 그분의 화해의 정신을 추구하기로 서약한다. 셋째, 우리는 『메노나이트 신앙고백』을 우리의 삶의 표본으로 삼고, 적용하기로 서약한다. 

넷째, 우리는 예수의 방법을 분별해 나갈 때 성령의 인도함을 추구하며, 믿음과 삶의 문제에서 성경의 말씀을 공동체적으로 성실하게 해석해 나갈 것을 서약한다. 다섯째,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분명히 증거하기 위해 성경적 뿌리 안에서 함께 논증하고 배우는 공동체가 되기로 서약한다. 여섯째, 우리는 각 개교회가 예수님의 방법을 신실하게 따르려는 열망이 있고,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서 지역적/정황적으로 분별해 가는 데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개교회 간 신뢰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서약한다. 

일곱 번째, 우리는 회중 간의 불일치를 경험했을 때 ‘지독한 인내’(forbearance)와 서로에 대한 순복의 태도를 지향하기로 서약한다. 여덟 번째, 우리는 분별의 과정에서 불일치를 경험했을 때, 당장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때에 더욱 선명하게 보여 주실 것을 확신하며(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거다’라는 미래적인 믿음이고, 이런 믿음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하셨다’는 과거의 기억에서 기인한다), 그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서약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수준에 도달했든지 지금까지 따른 법칙 그대로 살도록 합시다”(빌 3:15-16, 현대인의 성경).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의 전 사무총장이었던 잭 수더만(Robert J. Sudermann)이 2009년 메노나이트 교회 총회에서 발표한 『신실한 교회되기』(성경적인 해석의 혼동 가운데에서 영들을 시험하기(Being a Faithful Church: Testing the Spirits in the Midst of Hermeneutical Ferment)란 제목의 글 말미에서 각 교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이런 공동체적인 분별 과정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달성하는 데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가 교회의 소명을 달성하는 도구로서 분별을 이해할 때 우리는 분별의 순간을 문제가 아니라 기회로 생각하게 될 것이고, 교회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각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적인 분별에 대한 필요를 수용하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곧 ‘교회는 분별을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알게 해주는 확신과 다름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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