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7-10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영원히 살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무적의 복싱 챔피언이라던 마이크 타이슨도 얻어맞고 패할 때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초인적이라 할 만큼 큰 일들을 해낸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뽑아버릴 수 없는 “육체의 찌르는 가시”라고 말합니다. 

가시는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깊이 박히면 빼내기가 어렵습니다. 빠지지 않는 가시는 고통을 줍니다. 이 고통은 상실의 고통입니다. 깊이 박힌 가시로 인해 평안을 상실한 고통, 기쁨을 상실한 고통, 소망을 상실한 고통, 믿음을 상실한 고통, 사랑을 상실한 고통, 능력을 상실한 고통 등이 따릅니다. 우리나라의 몸에는 남북분단이라는 가시가 깊이 박혀 있습니다. 통일을 상실한 데서 오는 고통이 76년째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온 나라가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바울도 가시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하나님께 나아가 이 가시를 빼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시의 고통을 느낄 때에는 자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다.”는 것입니다.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에 어떤 응답이 있었습니까? 우선 첫 번 기도에는 아무 응답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간절히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첫 번 기도를 드리고 일어날 때 새로운 힘과 위로를 받았으리라고 믿습니다. 비록 응답이 없어도 기도하면 인격과 신앙에 유익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첫 번 기도에 응답을 못 받았으나 기도함으로서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고 낙심과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첫 번 기도는 나의 한계를 고백하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도의 유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나머지 두 차례 기도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바울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바울아, 너의 간구를 잘 들었다, 그러나 네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무지개를 만드는 데는 햇빛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비가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가 오고난 후에 무지개가 뜹니다. 고통의 비바람이 지나간 뒤에 인생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냅니다. 보다 값지고 풍부한 삶을 원한다면 가시의 비바람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세 번째로 다시 기도합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이 실패를 통해서도 은혜를 베푸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8,9).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주님의 말씀입니다. 

말에게 자갈을 물려야 온유해지고 쓸모 있는 짐승이 되듯이, 사람도 몸에 가시가 있을 때 온유해지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됩니다. 실패 속에 있는 은혜가 우리에게 성공의 길을 가리켜 줍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실패를 받아들이면 그것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 주는 은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사자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될 수 있고, 사탄의 마이너스가 하나님의 플러스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우리 중에도 찌르는 가시를 안고 사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몸의 가시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가시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의 가시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생활의 가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적어도 세 번은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응답이 없어도 기도 자체의 유익이 곧 응답임을 믿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가시를 통해 발견하는 큰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다시 바울의 말을 들어봅시다.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7-10).

내 힘, 내 지식, 내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된 자의 고백입니다. 이런 은혜, 이런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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