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묻다 1

이번 호부터 예수님께 인생의 중요한 질문을 하는 <예수께 묻다> 연속글을 나누려고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조금씩 일상을 찾아나가는 이때에 예수께 삶의 중요한 질문을 하면서 우리의 삶의 길을 찾아나가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은 “삶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주님께 하려고 합니다. 불안함과 불투명함이 가득한 이때에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삶에서 길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합니까?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 오늘의 질문을 묵상해 봅니다.

주님의 일하심을 의지하라
     

 

마태복음 11장에는 세례 요한이 헤롯 왕의 눈에 벗어나서 감옥에 갇힌 때의 일이 소개됩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을 보고 그것을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답답한 감옥 속에서 세례 요한의 마음에 회의가 찾아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요한은 자신이 길을 준비했던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인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세례 요한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 예수님의 대답은 동문서답 같습니다. 세례 요한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누구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예수께서는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일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나타나고 있음을 알려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전해 주신 메시지입니다. 감옥에서 회의에 빠진 채 무엇을 기다려야 할지 묻고 있는 요한에게 주님은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을 알려 줍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에게 의심하지 말고(마 11:6),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세례 요한에게 이런 대답을 주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마 11:7-9)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 질문은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려는 것이지만, 이 질문 속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보려고 인생 광야에 나갔더냐?” 우리는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어떤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본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1:7).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쉽게 변하는 것, 부질없는 것, 허황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질 없는 허상을 쫓으며 살아갑니다. 자기를 만족하게 하지 못할 것, 움켜쥔 손 안의 모래처럼 부질 없는 것을 쫓으며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또 어떤 사람들은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1:8). 좋은 옷을 입은 사람, 곧 예수님이 말씀하시듯이 왕궁에 있는 사람, 성공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부와 성공을 쫓으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광야에서 선지자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1:9). 이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결국 인생의 광야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세례 요한이 그 길을 준비했던 예수님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이야기에서 묵상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의심하지 말고 주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는 인생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예수께 묻는 “삶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본문은 주님을 만나라고 초대합니다. 우리의 인생 광야에서 쫓아야 할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허상도 아니고, 부와 성공도 아니고, 바로 예수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를 붙잡으면 새로운 길을 찾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라
     
한비야 씨가 쓴 『중국 견문록』에 이러 대목이 있습니다. “완벽한 지도가 있어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 시작하는 길, 이 길을 나는 거친 약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떠난다. 길을 모르면 물으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헤매면 그만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지도란 없다. 있다 하더라도 남의 것이다. 나는 거친 약도 위에 스스로 얻은 세부 사항으로 내 지도를 만들어갈 작정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늘 잊지 않는 마음이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가려 한다. 끝까지 가려 한다. 그래야 이 길로 이어진 다음 길이 보일 테니까.” 

이 글에는 길찾기에 대한 중요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길찾기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목적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지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길을 찾아나가게 하는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주님은 삶의 방향을 잃고 회의 가운데 있는 세례 요한에게 지금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광야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붙드는 것임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 내 삶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입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변화시키지 못할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정을 제게 주십시오.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용기를 제게 주십시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제게 주십시오.” 니버의 이 기도를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마지막 부분을 놓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다 올바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니버의 기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주신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믿음이 평정과 용기와 분별을 위한 기도의 근본입니다.

“삶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주님께 묻는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질문에 대해 주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인생 광야에서 주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 순종할 때 주님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갈 때, 우리는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모든 회의가 사라지고, 주님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삶의 길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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