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1-5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꾸어 말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선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의 눈을 뜨게 하며, 감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게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죄를 용납지 아니하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감사는 우리의 심령의 문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반면에 감사하지 않으면 심령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신령한 것을 전혀 볼 수 없게 됩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게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경이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어린이가 물에 빠져 죽게 된 것을 용감한 수병 하나가 뛰어들어 건져냈습니다. 목숨을 걸고 어린이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잠시 후 어린이의 어머니가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건져낸 어린이를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옆에 있는 수병을 쳐다보더니 물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아이를 물에서 건졌나요?’ 수병은 ‘예, 그렇습니다. 아드님이 무사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인이 다짜고짜 수병의 뺨을 후려치며 소리친 것입니다. ‘일 좀 똑똑히 해요. 우리 애 모자가 없어졌잖아요.’”

이것이 감사를 상실한 현대인의 참담한 모습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는 백성은 잘 될 수 없습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는 백성은 생각하지 아니하는 백성이요, 생각할 줄 모르는 백성은 실수와 과오를 범하고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갈파했던 것입니다. 

생각할 줄 알아야 감사하게 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사람다운 값있는 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미국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들을 합니다. 도덕적 타락, 정치적 무기력,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의 만연, 이 모든 심각한 위기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바로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게 된 데서 생긴 질병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생활의 모든 필요가 채워지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가족의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힘과 방법이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식탁에 진실한 감사의 기도가 있습니까? 성경을 보세요. 주님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음식을 놓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식사는 이따금 합니까? 매일 합니까? 매일 하지요. 그렇다면 감사도 이따금 할 것이 아니라 매일 해야 할 것입니다.우리는 온 가족이 따뜻하게 입을 옷이 있고 평안히 쉴 집이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인생의 특권과 자유를 감사해야 합니다. 
윌리엄 위트라고 하는 이는 “오늘 사는 삶 자체가 기적이요 축복이요 감사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우리에게는 마침내 돌아갈 고향집이 있고, 아버지께서 우리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감사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몇 해 전 한 대학생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았습니다. 학비 걱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학생은 실망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디프레스에 빠진 것입니다. 인생에 아무 의미도 목적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번민하고 있을 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예언서에 관한 책을 읽다가, 지금까지 지식으로만 듣고 배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이 다 사실이요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복음이 참 진리임을 깨달았을 때 그의 인생에 새 빛이 비쳤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날 밤 그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생동감 있는 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하나님이 자신과 직접 관계가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을 때 생명력을 되찾았습니다. 

마태복음 4장 16절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렇게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이 빛이 여러분의  삶 속에 비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는 날 동안 항상 감사할, 너무나 충분한 이유를 가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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