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Gangs of New York’ 의 한 장면

1840년대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는 영국계 갱단과 아일랜드계 갱단의 패권 다툼이 치열했던 곳이다. 영국계 이민자 우두머리 빌(Bill)은 잔인해서 ‘도살자’라고 불렸다. 그런 그는 먼저 신대륙에 와서 터를 닦았으며 독립전쟁 희생자의 후손인 만큼 이 땅의 원주인인 동시에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뒤에 이주해 온 아일랜드계를 핍박하고 두 집단은 살육전을 벌인다. 19세기 미국의 이민자들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 ‘Gangs of New York’ 주제이다.  

그런데 빌(Bill)이 뒤늦게 오는 이민자들에게 항상 내뱉는 말이 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과연 영국계가 원주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영국계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네델란드계이다. 더 기이한 것은 서로 이민자이면서 나중에 왔다고 배척하는 영국계와 아일랜드계의 갈등 속에 원조 토박이인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튼 180여 년 전에 나왔던 이 말이 요즘 우리의 귀를 거슬리게 하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 차별은 그동안 흑백 갈등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수직적 관계에서 시작된 흑백간의 문제와 달리,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주류와 비주류라는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주류에게는 아시아계가 그들과는 다른 언어, 문화, 관습 때문에 온전한 미국인이 될 자격이 부족한 이방인 혹은 외부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내뱉는 말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이다.

아시아계에 대한 경계심은 일본이 청일전쟁(1895)에서 승리하면서 나온 ‘황화론’에서 시작되었다. 아시아계를 한 집단으로 싸잡아 견제한 이 개념은 1960년대 들어 ‘모범적 소수자’ 로 진화했다. ‘모범적 소수자’란 법을 준수하고 근면성실하게 일을 함으로써 인종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주류 사회에 진입해 성공적인 삶을 사는 아시아계 이민자를 말한다. 

하지만 다른 소수 인종에 모범이 된다는 이 긍정적인 시각은 미국 사회에 불리하게 작용할 때에는 언제든 이방인(외부인)으로 내몰리는 또 다른 얼굴을 가졌고, 흑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악용되어 왔다. 즉, “아시아인들을 봐라. 열심히 배우고 일하니 잘 살지 않느냐”며, 흑인들의 불만과 가난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구실로 삼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흑인들은 지난 200여 년 백인과 함께 오늘의 미국을 이룩한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아시아계와 비교를 당하는 피해의식에 주류 구성원에서 밀려나는 박탈감이 겹치면서 분노와 증오로 연결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아시아계에도 일면 책임은 있다. 그 동안 아시아계는 한편으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삶을 살며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했다는 자족감에 안주해, 미 주류의 지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흑인이나 또다른 인종 소수자들보다는 우월하다고 스스로 차별화해 왔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을 비중있게 받아들이거나 그 저항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는 “아시아계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연결되고, 증오하기 쉬운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목소리를 내었지만 주류가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항변도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모두 일어서서 함께 큰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어떠한 차별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방패 도구에서 벗어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아울러 우리가 이 만큼 살 수 있는 제도적 터전을 닦기까지는 오래 전부터 가혹하게 쏟았던 수고의 땀과 인종차별의 유산을 멍에처럼 매고 흘린 흑인들의 희생의 피가 이 땅에 깊숙이 배어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성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포도원에 이른 아침에 온 일꾼이나 낮에, 오후에 그리고 저녁에 온 일꾼 모두가 똑같이 하루 품삯을 받는다는 이야기. 이는 먼저 오건 뒤에 오건,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차별없는 동일한 자격이 주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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