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묻다 2

예수님께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을 물어보며 삶의 길을 찾아나가는 <예수께 묻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팬데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주님께 하려고 합니다. 작년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상의 삶이 중단된 이후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지난 일 년 반의 팬데믹 기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새로운 삶의 길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질문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마 25:14-30)로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어떤 주인이 타국으로 먼 길을 떠나며 종들을 불러 자신의 소유의 관리를 위탁합니다.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기고, 마지막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열심히 일해서 각각 또 다른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이익으로 남깁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묻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받았던 한 달란트만 가져옵니다. 주인은 두 명의 종들에게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지만, 마지막 종에게는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으십니다. 

달란트 비유를 오늘의 질문과 함께 묵상하면서 우리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의 모습에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이 종이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의 우리 모습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이 종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지난 팬데믹 기간에 우리에게도 두려움과 불안으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처럼 살아온 모습이 있습니다. 땅에 묻은 한 달란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이 종은 단순히 돈이 아닌 무엇을 땅에 묻어두었던 것일까요? 

빌렘 드 로스트의 The Unmerciful Servant(1655)

하나님과의 관계를 땅에 묻다
     
첫째, 이 종은 주인과의 관계를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종말론 비유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가르침 가운데 중요한 메시지는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마 25:13). 종말의 때에 우리의 삶을 심판하러 오시는 하나님 앞에 늘 깨어 있을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늘 깨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늘 깨어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깨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한 달란트와 함께 땅에 묻어버린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그리스도인에게 준 가장 큰 도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해진 것입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늘고, 보는 사람 없고,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함께 모여 성경공부하고 말씀으로 교제하는 시간이 없어지면서 말씀 묵상과 나눔의 신앙생활이 약해졌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자리가 없어지면서, 기도 생활은 방향을 잃고,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신앙생활이 약해졌습니다. 공동체에서 교제하고 봉사하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사랑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은혜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지난 1년 6개월의 팬데믹 기간을 지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할애해 두었던 시간과 장소를 다른 것들이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의 루틴에 다른 습관과 다른 루틴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이 한 달란트와 함께 땅에 묻은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생하게 유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늘 분별하는, 깨어 있는 삶을 소홀히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팬데믹 기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신실하셨습니다(딤후 2:13). 이제 우리도 땅에 묻은 한 달란트를 꺼내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과 생생한 관계를 다시 맺는, 깨어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명을 땅에 묻다
     
두 번째, 한 달란트 받은 종이 한 달란트와 함께 묻은 것은 사명입니다. 주인이 맡긴 사명을 이 종은 땅에 묻어버린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남겼느냐로 종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얼마나 사명에 신실했느냐는 것입니다. 비유에서 주인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로 깨어 있었던 종들을 이렇게 칭찬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 주인이 종들을 칭찬한 이유는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곧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크건 작건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관심사는 바로 이 신실함입니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로 얼마나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인도의 캘커타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역했던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한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캘커타 거리에서 죽어가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당신은 어떻게 그들을 계속 도울 수 있었습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합니다. “나는 성공하라는 명령을 주님께 받지 않았습니다. 내가 받은 명령은 신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정확히 달란트 비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신 사명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신 사명에 신실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며 강조하시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명에 대한 신실함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명에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도 사명에 신실하라는 말씀을 땅에 묻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멈춘 듯이 보였지만, 우리가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일들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인종차별의 민낯이 드러났고, 아시아인 증오 범죄가 피부로 느껴질 만큼 증가했습니다. 미얀마에서,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선교지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씨름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깨어서 사명을 감당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향한 곳입니다. 이제 땅에 묻은 한 달란트를 꺼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 “팬데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팬데믹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의미를 찾기가 어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팬데믹 기간 중에 하나님 앞에 깨어 있지 못했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는 방법은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과의 생생한 교제를 다시 바로 세우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가 땅에 묻어둔 한 달란트를 꺼내어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나가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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