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한 장면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미국 정부 문장에는 중앙에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를 중심으로 둘레에 ‘다수에서 하나로(E pluribus unum)’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이는 미국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로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 pluribus unum: One of Many는 ‘다수로부터의 하나’ 혹은 ‘다수에서 하나로’ 라는 의미로 미국이 13개주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하나의 국가인 미국이 될 것임을 뜻한다.) 다양성과 화합을 기조로 더 나은 국가를 이루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이후에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을 표현하는 말도 여러가지로 생겨났다. 토마토  수프(tomato soup), 멜팅 팟(melting pot), 샐러드 볼(salad bowl) 등 시대에 따라 변했다.

미국 정부 문장에는 중앙에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를 중심으로 둘레에 ‘다수에서 하나로(E pluribus unum)’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이는 미국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로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 pluribus unum: One of Many는 ‘다수로부터의 하나’ 혹은 ‘다수에서 하나로’ 라는 의미로 미국이 13개주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하나의 국가인 미국이 될 것임을 뜻한다.)  다양성과 화합을 기조로 더 나은 국가를 이루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이후에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을 표현하는 말도 여러가지로 생겨났다. 토마토  수프(tomato soup), 멜팅 팟(melting pot), 샐러드 볼(salad bowl) 등 시대에 따라 변했다.

하지만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부정적인 시각들이 나왔다. ‘토마토 수프’는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들지만 주재료는 토마토이며 토마토 맛이 난다. 즉 미국은 다양한 인종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나라이지만, 어디까지나 영국에서 온 앵글로색슨 족이 중심이라는 뜻이 묻어 있다는 것.   또 다른 별명이 ‘멜팅 팟’이다. 이는 다양한 인종이 모두 녹아들어 완전한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인종이 된다는 뜻일 게다.  말하자면 용광로란 말인데, 얼핏 하나로의 화합으로 좋은 듯 보이지만 주류로 흡수하라는 획일성을 요구하는 인상이 강하다. 마치 시집귀신이 되어야 하는 ‘출가외인’처럼 정체성이 상실된 존재라고나 할까.   다시 미국의 상징인 국조(國鳥)를 보자. 흰머리수리가 양쪽 발에 쥐고 있는 월계수나 화살 묶음을 보면 융합의 멜팅 팟이라기보다는 결속을 다짐하는 여운이 있어 보인다. 여럿이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국민으로 결속된다는 뜻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샐러드 볼’이 다양한 인종이 각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채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더 나은 표현이 아닐는지. (물론 애당초 E pluribus unum이라는 것이 최초의 13개 주를 대상으로 시작된 것인 만큼 후에 야기될 시대적 요구까지 포괄적으로 예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이름이 무엇이든 실상과는 다른 현실이다. 미 의회와 정부는 100여 년 전부터 필요와 여건에 따라 다양한 이유로 이민을 규제해 왔다. 여러 나라 중 미국 땅에 맨처음 발을 내디딘 아시아 출신은 중국인이었다. 아편전쟁과 농민반란 등을 피해 모국을 떠난 30만여 명의 중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과 샌프란시스코 금(金)광산에 투입됐다. 중국 노동자는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환영 받았고 미국 기간산업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대륙간 횡단열차 건설이 그 대표적이다. 

하지만 미국내 실업률이 올라가고 경제불황이 계속되자 저임금 중국인 노동자들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백인의 고유 문화를 훼손하고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이유로 아시아계가 공격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871년 백인들의 집단 약탈, 방화, 살인 사건이 LA 차이나타운에서 일어나 중국인 17명이 살해됐다. 반중 감정이 격화되자 1882년 의회는 중국인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내용의 개정 이민법인 ‘중국인 배척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중국인의 미국 이주가 봉쇄되고,  그 자리를 일본인, 필리핀인 등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1885년부터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일본인은 1924년까지 40만 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본계 이주 노동자들이 종종 파업운동을 일으키자, 하와이 주 정부는 조선인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조선인 노동 이민자 102명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월급 16달러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13시간씩 일했다. (1860년부터 많은 농민이 기근을 피해 연해주와 만주로 이주해 얼어붙은 땅을 개간해 밭을 일궜다는 비공식적 기록까지 감안하면 한국의 이민역사는 160년 정도인 셈이다.)

아무튼 하와이 주정부가 조선으로 눈을 돌리자 불안해진 일본계 이민사회의 불만 호소를 받은 일본 정부는 ‘부강한 나라에 가서 돈도 벌고 잘 살게 해준다’는 신문광고로 조선의 노동자들을 현혹했다. 이렇게 모집된 1,000여 명이 1905년 5월 4일 멕시코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낙원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과 가혹한 중노동, 무자비한 폭력 그리고 굶주림이었다. 말하자면 자발적 노동 이민이 아닌 불법적 ‘노예 이민’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선인장의 일종인 ‘에네켄’ 농장에서 밤낮없이 땀을 흘려야 했다. 일명 ‘애니깽’으로 불려진 그들은 혹독한 노동 조건에도 매달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어 적극적으로 조국의 독립을 도왔다.(그럼에도 현재 그들을 위한 시설은 초라한 위령비 하나뿐이라고 한다.)

결국 이들 중 300여 명은 1921년 쿠바로 재이민을 떠나야 했다. 멕시코 노예해방 전쟁의 승리로 노동계약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자립할 능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일제하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63년 이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도 이민 행렬이 이어졌다. 이렇게 해외에 정착한 동포는 180개국 750만 명에 이른다. 이 중 단일 국가로는 미국이 250만 명으로 가장 많다. 

한인 이민자들의 삶의 수단은 각 지역에서 처음 이민자들이 시작했던 사탕수수밭과 에네켄 농장의 막노동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세탁소와 봉제업으로, 혹은 의류제조업 등으로 그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그리하여 오늘날 미국 사회 각 분야에서 눈부신 활동을 하며 자리를 빛내고 있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사탕수수와 에네켄 농장을 거쳐 ‘미나리’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낯선 타국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은 장한 이민자들의 모습이다.  한국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에서 연기한 할머니 ‘순자’ 역시 딸을 돕기 위해 태평양을 건넌 이민 1세대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정한길 씨도 병아리 감별사 출신이다. 

미나리는 요리에 곁들였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식재료이다. 복어 요리에 넣으면 독을 중화하며, 돼지고기와는 중금속 배출에 시너지 효과가 있다. 또한 여름에 자란 미나리보다 겨울 혹한을 견딘 미나리가 더욱 맛이 좋고 향도 많다.

조선시대 19대 숙종 때의 참요(讖謠)가 생각난다.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모략으로 폐서인이 되어 쫓겨난다. 그러자 저잣거리에서 ‘장다리는 한철이고 미나리는 사철일세’라는 노랫말이 나돌았다. 여기서 미나리는 민씨였던 인현왕후를, 장다리는 장희빈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결국 한철이라던 ‘장다리 장희빈’은 사약을 받아 죽음에 이르고, 사철이라던 ‘미나리 인현왕후’는 왕후로 돌아왔다. 그녀의 올곧은 성품을 닮아 척박한 땅에서도 사시사철 푸르게 자라는 ‘미나리의 승리’였던 거다.
그러고 보니 평생 조연으로 살아오다가 마침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된 윤여정에게 미나리는 맞춤 짝궁인 셈이다. 아니, 디아스포라 한인 이민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하며, 세계 곳곳에서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 ‘미나리들’에게도 경의와 격려를 보낸다.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