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측정할 수 없구나.” 

헨드릭 게리츠 포트가 그린 튤립 열풍 우화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1630년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중심지로 동방의 향료를 찾아 대양을 건너는 범선들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암스텔담은 돈이 넘쳐나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던 중 ‘튤립 뿌리 광란’ 사태가 일어났다. 튤립에는 160여 종이 있으며, 주로 지중해 연안국가에서 잘 자랐다. 콘스탄틴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튤립이 처음 네덜란드에 들어오자 이 남극풍의 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귀한 꽃이자 부(富)의 상징이 되면서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튤립으로 정원을 가꾸며 부(富)를 과시하는 풍조 속에 희귀한 튤립 뿌리가 투자 대상이 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튤립 한 송이와 배 한 척의 가격이 엇비슷할 정도였다.

광풍가격이 계속 오르므로 누구든지 빨리 사서 비쌀 때 팔 수 있으면서 이익을 크게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를 구입할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주택이나 토지가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누구나 부자의 꿈을 안고 이러한 열광이 오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후 튤립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연유를 몰랐지만 뒷사람이 앞사람의 매매 차익을 주는 일종의 폰지 게임 같은 현상으로, 가격 증가가 한계에 도달하자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폭락하게 된 것이다. 광기에 가까운 무분별한 투자의 바람은 결국 튤립 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역사상 최초의 투기 사건이다.

100년쯤 뒤인 1720년, 프랑스에서는 ‘지폐 광란(일명 미시시피 사건)’이 터졌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사치로 국고를 낭비해 막대한 빚을 남기고 사망했다. 파산 위기에 몰린 프랑스 왕실은 땅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면 상업과 무역이 살아날 거라는 이민자 출신 존 로(John Law)의 제안에 따라 토지은행을 설립했다.

18세기 지폐광란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존 로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금장인(金匠人: 오늘날 은행가)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돈의 흐름에 관심이 많았다. 런던 유학 중 결투로 인한 살인 혐의로 체포되자, 존 로는 영국을 탈출해 유럽으로 건너가 도박꾼으로 살았다. 그러면서 금본위 제도에 의문을 품고 땅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는 토지은행을 생각해 낸 거였다. 

은행이 토지를 담보로 은행권을 내주고 후에 금(金)으로 바꿔 주는 식이었다. 그러니 더 많은 담보를 받고 더 많은 지폐를 내주려면 금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프랑스는 미국 대륙에 광활한 토지를 갖고 있었다. 루이지애나 지역이다. 존 로는 미시시피 강 유역에 프랑스 식민지를 운영하는 회사를 세우고 금광 개발을 목적으로 많은 수익을 낼 것이라고 선전하며 돈을 대출해 주는 등 투자를 부추겼다.

하지만 금이 발견되지 않았고, 국가 빚을 갚기 위해 찍어낸 지폐는 주식을 사는 데 쓰였으며, 더 많은 주식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찍어내기만 하다가, 결국 ‘미시시피 거품’은 붕괴되었다. 

존 로는 가까스로 프랑스를 탈출해 베니스에서 무일푼으로 죽었다. 이 일로 인해 프랑스 재정은 거덜났으며 물가 불안에 시달리던 시민들은 곳곳에서 봉기했고 이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남해 회사 사건

존 로가 프랑스를 탈출했던 해에 영국에서도 유사한 투자 거품이 발생했다. 일명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사건이었다. 이 역시 미시시피 사건과 유사했다. 남해회사는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빚더미에 앉은 영국 왕실에게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방법을 제안했다. 그 대신 남미무역 독점권을 받았다. 왕실의 빚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에 정부도 나서서 관련 법령을 통과시키는 등 적극 도왔다.

그러자 투자자들이 몰려들었고, 회사의 주식가는 폭등했고, 주식 수요가 폭증하면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남미무역 독점권은 이미 스페인이 갖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회사는 허명일 뿐 수익이 없었다. 수익이 이자를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거품은 붕괴되었고 귀족이 되었던 회사 설립자는 런던 길거리에서 성난 피해자에게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세계 대공황, 일본이 경험했던 ‘잃어버린 20년’, 2000년대 초반 ‘닷컴(.com)’이라는 단어의 회사명에 따른 ‘IT버블’,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투기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되풀이되어왔다.   

최근 비트코인(Bitcoin) 소요 또한 문제의 중심에 섰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 때문이다. 올해 2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겠다.”라고 깜짝 발표를 하자 가상화폐 가격은 폭등했다. 하지만 3개월 후 갑자기 테슬라 대금 결제 중단을 선언해 시장은 폭락했다. 더 나아가 테슬라가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모두 처분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더니, 스스로 사기라고 했던 ‘도지코인(Dogecoin)’을 띄우기 시작했다(2013년 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장난삼아 일본 시바견 밈(meme)을 이용해 만든 가상화폐).

머스크의 ‘아무 말 잔치’에 놀아난 도지코인 사태    

자신의 팔로워 5,500만 명을 통해 가상화폐 시세를 요동치게 하는 머스크의 행태에 전 세계 코인 투자자들이 놀아나는 셈이다. 그가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성 장애)을 앓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발언은 정도가 심하다. 코인은 주식과 달리 시세 조종 행위로 처벌받을 일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발해냈다는 비트코인은 정해진 총량이 있다. 총 2,100만 개이다(전문가들은 비트코인 전부 발행되는 시점을 2150년으로 예상). 액면가가 있는 주식과 달리 비트코인은 애초에 정해진 가격이 없다. 블록체인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 통화이기 때문이다. 가격을 보면 2010년 1달러도 안 되었던 것이 지금은 무려 32,000~35,000달러가 되었다.

단지 해킹을 막기 위한 기술인 블록체인 자체의 유용성은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암호화폐가 화폐나 금융시스템을 언제, 어느 정도까지 대체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이 “암호화폐는 투기 자산에 더 가깝다.”고 시사했다.   

바람 잡아 돈 놓고 돈 먹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잘 아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과학자 뉴턴 역시 앞에서 언급한 ‘남해회사’에 투자해 2만 파운드를 잃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측정할 수 없구나.” 

* 김학천 필자는 2010년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대와 USC 치대, 링컨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온타리오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