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묻다 3

예수님께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을 물어보며 삶의 길을 찾아가는 <예수께 묻다>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호에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주님께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과연 우리가 붙들고 살아가야 할 믿음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에 나오는 한 이방 여인의 모습에서 믿음이 무엇인지 묵상하려고 합니다.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마 15:21-28)는 예수께서 이스라엘 북쪽 해안가인 두로와 시돈에 가셨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을 넘어선 이방 지역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귀신 들린 딸을 둔 한 이방 여인을 만납니다. 

이 이야기에는 낯선 모습의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그동안 복음서에서 보여 주었던 사랑 많은 예수님은 사라지고, 독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외침에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상대한다며 여인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나중에는 가나안 여인을 개에 비유해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이러한 낯선 모습의 예수님이 오히려 이 여인의 믿음을 빛나게 만듭니다. 마지막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주님은 이 여인의 믿음에 감탄하시며 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감동시킨 가나안 여인의 모습에서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지 묵상하게 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주님께 외친 세 번의 말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여인은 이렇게 외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막 15:22). 가나안 여인은 딸이 고통 중에 있는 절박함 속에서 주님께 불쌍히 여기 주시길 간구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실 이것만큼 좋은 기도가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도 가운데 하나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탄식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기도란 무릇 절박함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도의 정의 자체가 “절박함 속에서 가슴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외침”입니다. 

그래서 삶의 위기는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삶의 절박함 속에서 주님께 가슴으로부터 외치는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이 바로 가나안 여인의 믿음입니다. 삶의 위기 속에서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주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이 기도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릅니다. 삶의 문제가 어깨를 짓누르는데, 기도할 힘도,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지도 우리는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믿음은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삶의 문제와 절박함 속에서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를 도우소서”

가나안 여인은 두 번째로 주님께 외칩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 15:25). 가나안 여인은 주님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주여 저를 도우소서” 외치며 나아갑니다. 주님은 우리도 이 간구를 드리길 원하십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쓴 『한 시간 기도』에는 한 선교사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멕시코에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여자아이 한 명을 입양했습니다. 이 아이를 친아버지의 학대로부터 구출했는데, 하나님께서 선교사에게 그 아이를 입양하라는 마음을 주셨던 것입니다. 

선교사는 딸이 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이제 너는 내 딸이야. 그러니 무엇이든 필요하면 아빠에게 이야기하렴.” 하지만 이 아이는 선교사에게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딸이라면 아빠에게 투정 부릴 것도 많을 텐데, 이 아이는 한 번도 울거나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가 선교사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 신발끈이 필요해요.” 선교사는 이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내게 자기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길 원하십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6:26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사랑으로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간절한 마음으로 아뢰어야 합니다. 때로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지라도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에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주님께 내어놓고 “주여, 저를 도우소서” 라고 외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주소서”

계속되는 본문의 이야기에서 뜻밖의 전개를 보게 됩니다. 주님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도우소서.” 외쳤던 이 여인에게 예수께선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라고 말씀합니다. 이 여인을 개에 비유하면서 여인의 간절한 외침을 매몰차게 거절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이 그날 기분이 안 좋으셨던 것일까요? 아니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우리 같으면 다 그만두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간 이곳에서 이 여인의 믿음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이렇게 외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15:27). 성경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여인의 이 말입니다. 이 여인은 모든 어려움을 부드럽게 끌어안습니다. 개들도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으니, 은혜의 부스러기를 달라고 주님께 간청합니다. 주님이 어떻게 이 여인의 믿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 은혜의 부스러기를 구하는 이 여인은 믿음의 중요한 모습을 가르쳐 줍니다. 이 여인은 인간이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그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몫으로 주시기를 겸손하게 간구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보여준 믿음은 한 마디로 “철저한 신뢰”입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철저한 신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가나안 여인과 같이 우리도 주님께 겸손하게 기도합니다. “주여, 저에게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몫으로 주소서.” 주님께 겸손하게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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