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 모두를 활용한 올라인(all-line) 예배"

“아직도요? 저런!” 주일 예배 설교부탁을 받으며 대화하던 중에, 주차장에서 예배하고 있다는 설명에 안타까운 마음과 대단하다는 마음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몇 개월 전 방문했을 때 받은 감동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미국 교회 건물을 빌려서 예배 드리고 있던 이 교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 동안 건물 실내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대면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부랴부랴 온라인 예배를 준비했고, 방송에 익숙하지 않았던 목회자나 인터넷 사용법을 잘 몰랐던 성도들 모두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몸과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러다가 온라인 예배에 대한 정서적, 신앙적 고민이 많은 성도들(특히 나이 많으신 성도들)을 위해 주차장에서 드리는 드라이브인 예배를 선택했습니다. 예배 인도와 설교를 위한 야외무대를 매주 설치하고, FM 라디오 주파수의 필요 시간을 임대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소도시의 작은 교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장비와 기술의 발달로 생각보다 적은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소원하는 마음과 아이디어였습니다. 주차장이라도 좋으니 늘 예배하던 거룩한 땅을 밟고 싶어하는 마음, 자동차 창문을 통해서라도 손을 흔들며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성도애, 목회자와 나누는 따뜻한 인사와 사랑의 눈빛을 기대하는 양들의 마음이 순간순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예배하기를 1년여. 이제 상황이 많이 나아지고 실내 모임 허용 기준도 완화되어 대면예배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주차장에서 예배라니? 왜 그런가 물었더니 주일예배를 위한 실내사용이 허락되었지만 찬송을 부르지 말라는 제한이 있더랍니다. 마음껏 찬양하지 못하는 것이 끝내 아쉬운 성도들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해오던 대로 당분간 주차장 예배를 드리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차 안에서는 마음껏 찬양할 수 있으니까요. 

몇 개월 만에 다시 방문한 주일예배, 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차량들이 직사광선 아래에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110도를 넘었는데 어떻게 차 안에 계셨을까. 기타를 들고 있는 찬양 인도자가 예배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번에는 기타로만 찬양을 반주하나보다 했는데, 스피커를 통해 피아노 반주가 울려나왔습니다. 녹음이 아닌 실제 연주였는데, 이유인즉 비가 많이 오는 겨울철 야외에서 키보드를 오래 사용하다 보니 고장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당에 있는 피아노를 사용하기로 하고, 리시버와 마이크를 연결해 실외의 회중들이 찬양할 수 있게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기타를 들고 찬양하는 인도자, 실내에서 인도자의 멘트에 따라 연주하는 피아노 반주자, 그들의 협연에 의한 찬양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차 안의 스피커에서 울리면 성도들은 차 안에서 힘차게 노래합니다. 현장에 모여 예배하지만 설교는 자동차 안의 라디오를 통해서 듣고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찬양팀이 호흡을 맞추어 역시 다른 공간에 있는 회중들과 합창을 만들어내는 이 생소한 예배를 경험하고, 성도 일부는 동시 중계되는 인터넷을 통하여 예배에 참여하고 끝나자마다 좋아요와 댓글을 올리며 교감을 나눕니다. 

방송국처럼 음향과 영상 설비를 갖추고 전문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가 있었다면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겠지만, 1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지역교회가 준비해 드리는 예배 모습을 보면서, 이보다 더 멋진 예배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날로그 영성에 하이테크놀러지 예배 형식이 결합된, 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 모두를 활용한 올라인(all-line) 예배였습니다. 그리고 올라인 예배야말로 ‘온전한 예배’로 나가는 길임을 확인했습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씀이 있고, 필요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도 있습니다. 예배를 향한 정성과 열심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펜데믹이 교회에 가져다 준 선물은 ‘예배의 재발견’이라 여겨집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방식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라! 하나님을 향한 열심, 아니 하나님의 열심으로 섬기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세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것이 ‘새로운 기준 New Normal’이 되는 것 아닐까요? 예배뿐 아니라 대인관계도, 인격 개발도, 미래 개척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동원하여 도전하고 두드린다면, 창의적이고도 의미있는 최선의 결과들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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