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강단 (10)

 

복음을 통한 우리의 삶의 원천은 믿음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준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 믿음에 의해 사는 것이다(롬 1:17). 그것이 복음 안에 담긴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이다. 복음에는 죄인이 하나님 안에서 값없이 의롭게 되는 길이 있다. 또한 복음 안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 동안 큰 믿음과 겨자씨 같은 믿음에 대해 지속해서 가르치셨다. 특히, 병든 자를 치유하실 때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눅 7:50; 막 10:52; 마 15:28). 마태복음 8:10에 백부장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말씀만 하셔도 낫겠다고 한다. 그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칭찬하시며 그의 믿음대로 되게 하여 낫게 하셨다.

마가복음 9장, 마태복음 17장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 대해 나온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그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셨다. 그 후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오니 제자와 무리 중에 큰 변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다들 침묵하였다. 이를 깨고 나선 사람이 무리 중 가장 답답한 지경에 놓인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였다. 그는 무리를 헤집고 달려와 숨김없이 그간의 일을 설명하였다.

사실 제자들은 능히 예수님을 대신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고(막 3:15), 제자들을 전도하러 파송하실 때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막 6:7). 또한 제자들은 이미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친 경험이 있었다(막 6:12-13). 그러나 변화산에 올라가지 않은 남은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한탄하시며 귀신을 내쫓으셨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묻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수님이 내려오시기 전에 이 귀신들린 아이를 놓고 제자들이 기도를 안했을까? 여기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핵심은 그들의 믿음이다. 예수님은 무리를 가리켜 “믿음이 없는 세대”(막 9:19), 또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막 17:17, 눅 9:41)라고 선언하신다.

믿음 없는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은 산 아래 있던 제자들과 무리들의 세대뿐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세대,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수선한 시대에 믿음 없이 사단의 방해와 억압, 논쟁과 다툼만 있는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선 “진정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는 말과 논쟁만 있을 따름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의 의로 인한 구원의 능력이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당시 아이의 아버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수님께서 할 수 있다면 고쳐 보시라는 부탁의 말을 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마가복음 9:23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하면서, 23절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며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아이의 고침은 아버지의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 질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외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이 자신들은 귀신을 쫓지 못한 이유를 물었을 때“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부르짖는 외침이 겨자씨만 한 믿음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 서기관과 무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자들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전적인 신뢰와 전적인 의지이다. 그러한 믿음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이의 아버지처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며 부르짖어야 한다. 히브리서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했다. 

바라는 것이 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믿음은 마치 일어난 것처럼 보고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전 존재로 하나님을 100%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세상과 양다리 걸쳐서 만약 믿은 것이 거짓일지라도 조금 타격을 입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망하고 헛된 삶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고전 15:16-17에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믿었는데도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이기에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한 부정으로 강조하고 있다. 믿는 자에게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부활의 영생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었던 것이다. 그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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