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 목사, 오렌지카운티영락교회 담임

누가복음 21:25-28; 34-36

성공한 기업가가 말했습니다.“성공에 이르는 길이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열네 시간씩 일했습니다. 땀 흘리고, 투쟁 하고, 혹사를 당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끝없이 사다리를 올랐습니다.”
대회사 사장이 영성 수련회에 참가한 후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번 수련회에서 비로소 내가 틀린 빌딩에 놓인 사다리를 올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날개의 선물”이란 책에서 리차드 바흐는 참 성공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수영장 다이빙대에 도전했던 일이 기억나는가? 여러 날 밑에서 올려다보다 마침내 다이빙 대로 올라간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둘이다. 계단으로 내려가든지, 다이빙대에서 뛰어 내리든지 택일해야 한다. 대 끝에서 따가운 햇볕 아래 벌벌 떤다. 앗차 하는 순간 몸을 너무 숙였다. 돌아서기에는 이미 늦었다. 어쩔 수 없이 뛰어내린다. 기억나는가? 그 순간 다이빙대를 정복한 것이다. 그 후에는 몇 차례고 계단을 오르고 다이빙을 한다.”
영혼은 “태양 아래 떨고 있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뛰어들라. 내가 주는 새 생명으로 뛰어들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고 치유와 회복을 구하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참된 인생의 성공 스토리를 만든 법을 하나님께 배우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습니까? 세상일에 종이 되면 결국 낭패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습니까?
현대인은 물질주의와 그것이 조장하는 공포와 불안의 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해방과 자유를 주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마음과 영혼의 평화를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생명을 위한 그의 처방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21:25-26). 그러나 그 재난 앞에서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명하십니다. “해방이 가까이”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
깨어 있으라. 모든 공포와 불안에서 자유하는 그 날을 맞으라. 온갖 비참한 기억들을 치유 받는 그 날을 맞으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그 날을 맞으라.
우리는 인생이 일장춘몽이라는 허무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탤런트 기획사를 방문했습니다. “뭘 할 줄 아세요?”직원이 물었습니다. “새 흉내를 잘 냅니다.” 지원자가 말했습니다. “그 정도의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간만 허비했군요. 나가세요.”직원이 대꾸하자, 지원자가 두 팔을 펄럭이며 창문으로 날아 나갔습니다.
시인은 우리를 속박에서 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합니다.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시124:6,7).
사냥꾼의 올무를 벗어나 날아가는 새의 기쁨을 상상하면, 예수님이 자유를 주러 오셨다는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그러자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만류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3). 베드로가 고백한 것은 고난당하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베드로가 사단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가 십자가를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죽음을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습니까? 이 선물이 계시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모른다 할 수 있습니까?
그 메시지를 받아 심령에 새기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 가운데로 뛰어들면, 인생의 성공 스토리는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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