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 목사, 오렌지카운티영락교회 담임

요한복음 1:10-11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또는 미켈란젤로나 셰익스피어 같은 위인 중에도 그들이 태어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유대 민족이 적어도 2,3백 년 이상 그를 기다렸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헬라와 로마의 학정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오리라는 기대와 소망이 있어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몰라보았습니다. 그의 모습이 기대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호화스럽고 떠들썩한 왕의 행차로 오리라 기대했으나 아니었습니다. 조용하게 왔습니다. 말컴 마그릿지는 이렇게 씁니다. “그날 밤 아기 예수만큼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다시 없었던 것 같다.”


로마 정권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기대했으나 아니었습니다. 사단과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기적적 위업으로 온 세상을 굴복시키기를 기대했으나 아니었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주린 자를 먹이셨을 뿐, 성전에서 뛰어내려 세상으로 믿게 만들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젊은이에게 율법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를 기대했으나,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가르치셨을 뿐입니다.


생활의 편의, 세금 감면, 고용 창출, 물가 안정을 보장해 주기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더 힘든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면류관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환경을 바꿔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 문제는 사람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기를 기대했으나, 그는 패배자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민족과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붙잡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는 거세게 흐르는 강물 같아서 둑을 쌓아도 붙들지 못했습니다. 해피엔딩을 약속하는 그리스도를 기대했으나, 그는 그런 것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게으름 피우다 혼인 잔치 집에 못 들어간 처녀들과, 바쁘다는 핑계로 초청을 거절하고, 잔치 참석 기회를 상실한 사람이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문이 닫힐 수도 있고, 버스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마구간 탄생과 십자가 죽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했습니다. 세상이 그를 몰라보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기대했던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는 기대 밖의 그리스도로 오실 것입니다. 세상 권력과 충돌하며, 세인의 기대를 깨뜨리며 오실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돌 같은 심령을 녹일 것입니다. 찢긴 상처를 고칠 것입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을 만나주시고 위로할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오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는 기대 밖의 그리스도일지 모릅니다. 그는 교회나 가정 같이 친숙한 곳에만 오시지 않습니다. 낯선 거리나 대학 캠퍼스에 오실 수도 있고, 유원지나 실험실에 섬광처럼 오실 수도 있습니다. 모두 좋아하는 캐럴 같은 음악 가운데만 오시지 않습니다. 거칠고 원시적인 락 음악의 리듬 속에 오실 수도 있습니다.


익숙한 성경말씀과 기도의 언어 가운데만 오시지 않습니다. 알아듣기 어려운 은어나 속어 가운데 오실 수도 있습니다. 라틴어 성경을 벌게이트라고 하는데, 속어로 된 성경이란 뜻입니다. 


빈틈없는 예의범절 가운데만 오시지 않습니다. 그런 것과 거리가 먼 곳에 오실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가 옛날 방식으로 오시면 편할 것입니다. 오래된 것들을 다시 쓰면 시간도 문제도 돈도 절약이 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는 우리를 놓아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살리기 원하십니다. 믿는 자에게 풀어야 할 문제를 주십니다. 이미 아는 해답 가운데 주저앉아만 있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문제와 부딪치고 부대낄 때 그의 생명력이 더욱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물을 동하게 하는 천사처럼 오십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논리나 이성의 포장지로 쌀 수 없다. 나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포장하지 못 한다. 신학체계나 교회제도 안에 묶어 두지 못한다. 나는 맑은 공기를 찾아 넓은 세상으로 빠져나갈 것이니까.” “내가 주는 평안을 원한다면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불편 없는 평안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내가 바람처럼, 생기처럼 올 것이다. 나를 기대하지 않는 자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나를 만나면 기대 밖임에 놀랄 것이다.”


조지 맥도널드의 찬송시 한 구절입니다.

그들은 원수를 물리치고
영광을 되찾아줄 왕을
고대했네.


그러나 오 인자여 당신은...
숨겨진 비밀의 계단으로
내려오셨네.


모든 문제의 해답과
모든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기대 밖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숨겨진 비밀의 계단으로
내려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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