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페스티발
맨체스터 페스티발

영국의 Faith Survey에 따르면, 영국 인구의 5%만이 주일에 교회에 출석한다. 28%만이 "하나님 혹은 더 높은 영적 능력을 믿는다라고 말하며, 38%는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영국의 이런 영적 추세를 고려할 때, 메시지 트러스트와 루이 팔라우 협회에 의해 기획된 전도 행사인 '페스티발 맨체스터'에서 수천 명의 영국인들이 복음에 응답했다는 소식은 놀랍기만 하다.

행사 기획자들에 따르면, 7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위텐쇼 공원에 65천 명이 참석했고, 3,472명이 복음에 응답했다. 기획자들은 영국 북서부에서 가장 큰 전도 행사였다고 전했다. 행사에 앞서 두 단체는 지역교회들과 함께 18개월 동안 사회 활동 프로젝트를 통해 전도했다. 수천 명의 영국인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복음에 응답했다.

루이 팔라우 협회의 앤드류 팔라우 목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교회가 연합하여 도시를 섬기고, 몸을 격려하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바로 우리가 맨체스터에서 본 것이다.“라고 말했다.

루이 팔라우는 개인적인 친구이며 신앙의 위대한 영웅이다. 그가 영적 고향으로 돌아간 지 16개월이 지났으나, 하나님 사랑이라는 복음을 전하는 그의 사역은 각 개인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에겐 손자가 없지만(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개인적인 구원의 관계를 맺어야 하므로), 우리가 전도한 사람들이 전도한 그들은 우리의 영적 손자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 왕국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때까지 확장된다.

물론 사탄은 하나님의 곱셈 전략을 알기에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나누지 못하도록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도움을 청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러한 응답에 대한 3가지 성경적 설명을 생각해 본다.

첫째, 하나님은 때때로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고통을 사용하신다.

아담의 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17)고 말씀하셨다. 미리암의 나병(민수기 12:10-15)부터 자신을 우상 숭배하게 만든 헤롯의 죽음(사도행전 12:20-23), 계시록의 재앙과 형벌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개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고통의 예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통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아니다. 요셉, , 예수님의 무고한 고통, 베들레헴의 아기들의 죽음(마태복음 2), 신약에 나오는 기독교인들의 순교를 기억하라. 개인의 고통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가정해선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죄가 우리의 상태와 관련이 있는지를 주님께 물어보는 것은 좋다. 우리의 고통이 어떤 면에서 죄의 결과인가? 죄가 성령의 치유 사역을 방해할 수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며 우리는 응답할 수 있다(요일 1:9).

둘째,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를 보여 주시려고 고통을 사용하신다.

고통은 우리가 우리 자신 너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암에는 암 전문의가 필요하다. 폭풍우에는 쉘터가 필요하다. 고통의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신뢰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 혹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고대 유다에 대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2:13)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환난을 당하면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27)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신다.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너를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28).

하나님은 바울의 간구에도 그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시지 않았다(고후 12:8). 오히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더 깊고 의존적인 관계로 이끄심으로써 그것을 구속하셨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9).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10)라고 말하길 배웠다. 그의 모범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가 따를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성장시키려고 고통을 사용하신다.

크레이그 데니슨은 내게는 거룩함이 없으므로 나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 수 없다.‘라는 글을 썼다. 그의 말이 옳다. 내게 없는 것을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 나는 내 키를 키울 수 없고, 나이를 바꿀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무엇을 원한다면 그것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치료를 받기 위해 의사를, 법률 상담을 받기 위해 변호사를,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는 이유이다. 계속해서 크레이그는 이렇게 썼다. ’거룩함은 완전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본성을 마음을 열고 지속해서 만난 직접적인 결과이다. 우리는 그분을 만나면서 죄로부터의 자유와 상처에 대한 치유를 경험할 것임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도움을 청하게 할 때, 이러한 돌아섬이 성령에 의해 우리가 거룩해지는 그 자리다. 그런 다음 그분은 우리를 최고의 자아로 성장시키기 위해 고통을 사용하여 우리의 고통을 구속하신다. 시인이자 사제인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가 말했듯이 "폭풍은 참나무의 뿌리를 더 깊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소식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당신은 단 하루도 사랑을 받지 않은 날이 없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기에 당신은 기쁨이 오리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라고 맥스 루케이도는 말했다.

다시 한 번 들어본다. ”당신은 단 하루도 사랑받지 않은 날이 없다.“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7월 14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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