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

어느 나라 식당에서든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육류 메뉴 세 가지는 소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닭고기다. 그 중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이 닭이라고 한다. 동양에선 십이간지 중 유일한 조류가 닭이다. B.C. 1500년 경부터 가축화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경에서 베드로는 새벽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의 연약함과 잘못을 발견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닭은 생각보다 오래 산다. 약 15년 정도까지. 인간을 위해서 너무 일찍 희생당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옆집에 자극을 받아 닭을 키운 지 3년 되었다. 텃밭 농사를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사 먹는 것이 재배해서 먹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 닭 사육도 마찬가지다. 유기농 달걀이라고 가치를 부여해도 사먹는 것이 더 싸다. 그런데도 채소와 가축을 기르는 것은 관상 또는 반려의 즐거움 그리고 그 속에서 깨닫는 인생의 교훈 때문이다. 

주인의 발걸음을 알아보고 뒤뚱뒤뚱 달려오고, 두 손을 벌리면 그 사이로 들어오고, 살포시 안아 주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몸서리치지 않는다. 체온과 깃털의 부드러움을 느끼노라면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된 심정이다. 닭은 딱딱한 알 껍질을 만드는 데 자기 몸의 칼슘 10%를 소진하면서, 한 달에 약 25개의 알을 만들어 낸다. 그 중노동을 생각하면 아침 식탁의 계란을 대하기가 미안하다. 알에서 끝나지 않고 생명이 이어지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5월 초에 두 녀석이 포란을 하기 시작했다. 모이를 먹을 때 외에는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킨다. 지난해 봄에도 포란을 했다. 문제는 아무리 품어도 병아리가 될 수 없는 무정란이라는 사실. 결국 속이 곯아 버린 알들을 버려야 했다. 올해도 이 안타까운 일을 보고만 있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는 분에게 유정란을 얻어 둥지 안에 넣어 주었다. 해산을 위한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세상에나! 정확하게 21일째 되는 날, 삐약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오란 녀석 세 마리와 검은 녀석 한 마리가 꼬물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어미가 된 닭들도 둥지에서 벗어났다. 자기가 낳은 알이 아니기에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녀석은 사랑스럽게 병아리들을 보살펴 준다. 그 다정한 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하여 경외심을 가지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병아리를 농장에서 사오면 3~4주 가량 실내에서 키우고 할로겐 등으로 온도 관리를 해야 하는데 어미닭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한다. 어스름해지면 병아리들이 어미 뱃속으로 쏙 들어가 깃털 하나 발견할 수 없다. 먹이도 신경쓸 필요 없다. 어미닭이 먹이 있는 곳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큰 먹이는 한 번 쪼은 다음 새끼에게 넘겨 주기도 한다. 

몸집이 작은 병아리가 닭장 그물 사이로 빠져 나가면 어미닭들이 울타리를 훌쩍 넘어 아기들을 따라다닌다. 질서가 무너졌지만 차마 막을 수 없다. 아기들이 조금 멀리 가면 꼬꼬댁거리며 불러모으거나 따라간다. 육아는 두 녀석이 함께한다. 같은 시기에 포란을 했던 다른 닭도 한 몫을 감당한다. 저녁 때가 되면 어미닭 두 마리가 새끼들을 서로 품으려고 자리 쟁탈전을 벌인다. 동성 커플의 육아 과정을 집에서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 1주 간격으로 밤새 병아리 두 마리가 사라졌다. 들쥐나 다른 야생 동물의 공격 때문인 것 같다. 안타깝고 미안하고 화가 나서 한동안 괴로웠다. 어미 녀석들도 바짝 긴장한 듯하다. 반려견 잭이 병아리들에게 다가갔다가 어미닭에게 혼쭐이 났다. 난생 처음  황당한 일을 겪은 잭은 병아리와 적정거리를 지키며 바라보고만 있다. 모성애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낀 잭도 병아리 보호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우리 집의 생태계를 움직이는 중심은 햇병아리 두 마리와 어미닭 두 마리다. 뒷마당을 돌아다니며 땅을 헤집고 똥을 싸고 야채를 쪼아 놓는다. 어미닭 두 마리와 두 병아리 모두 깃털의 색도 다르고 품종도 다른 다민족 공동체이다. 그런데도 얼마나 화목해 보이는지, 그저 흐뭇하다. 그들에게서 사랑의 힘을 발견해서일 것이다. 언젠가 성계가 될 것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있는 한 공동체로서 지낼 것이다. 관리가능한 범위 안에서 녀석들에게 최선의 돌봄을 제공할 생각이다. 마치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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