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마가 선교사(볼리비아)


가족 없이 홀로 계시는 분들, 혹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 반려견과의 동행은 다른 분들에게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혼밥 인구가 늘어가는 이 시대에는 더욱 그러할지 모른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몸으로 말과 감정을 전달하고 주인과 늘 동행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반려견은 때로 힐링을 주기도 한다. 어떤 때는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해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반려견을 생각하던 어느 날, 반려견과의 관계는 사료와 잠자리, 산책 등 기본적인 것을 주인은 공급하고 반려견은 받는, 지극히 단순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를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와 대비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신앙이 어리고 하나님을 알기 시작한 초기에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축복을 바라는 기초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10년, 20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생활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인과 반려견의 관계처럼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의식주의 도움을 받는 관계 정도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청하고, 해결되면 원점으로 돌아가고, 다시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고, 해결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신앙 생활이 반복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를 반려견적 신앙생활이라 부르고 싶다. 이는 가나안에서 사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서 원하신 것은 제사장 나라로서 거룩한 백성의 내면과 성숙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품고 전 세계 백성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유일하신 하나님, 유일한 경배 대상이신 하나님, 오직 한 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방에 전하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민족으로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들의 계획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삶의 목적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는 아브라함의 삶에 잘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모든 관심과 목적이 하나님을 통해서 한 맺힌 아들 문제를 해결하고,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사는 것이었다. 죽기 전에 아들로부터  아버지 소리를 듣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잊어버리시고 취소하신 것 같아 하나님께 왜 아들을 주시지 않느냐고 화를 냈고 결국에는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중도 탈락시키지 않으시고 끝까지 품으시고 인내하셔서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으로 키우셨다.

하나님께서 이런 아브라함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셔서 직접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아브라함의 가정을 방문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륵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7-19).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알리신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깊은 친밀함이 존재한다. 아브라함이 그만큼 깊어지고 성숙해진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과 아브라함의 마음이 일치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원하시는 것이리라.

오래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여전히 문제만 해결해 달라 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만을 바라며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답답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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