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1-2

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 되심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이해하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됨을 이해하십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예수님은 다 큰 어른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여인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신 분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인자(人子)”라는 말이 스물 세 차례나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시므로 사람인 우리를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신약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나서 자라셨습니다(눅 2:52). 정상적인 사람의 성장 과정을 다 거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눅 22:44)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속성을 이해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시험으로 시작되어(4:1-13) 시험으로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마귀와 싸우셨습니다. 실제로 시장하셔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고 싶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버리고 타협으로 세상을 차지하고 싶은 유혹도 정말 받으셨습니다. 깜짝 놀랄 일을 벌여 인기를 독점하고 싶은 유혹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해도 담대히 주님께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시험 당할 때 주님께 나가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 됨과 시험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친히 겪으셨으므로 설명하기 전에 이미 다 이해하십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눅 7:11-15). 스토아 철학은 하나님의 대표적 속성이 무감동 또는 무감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므로 실망하셨습니다(눅 4:24; 눅 17:17; 눅 22:21). 

예수님은 사람이므로 기도하셨습니다(눅 5:16; 눅 22:44). 그의 기도는 시늉이나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고난 받으셨습니다. 몸에 채찍이 휘감기고, 대못이 손바닥을 뚫고, 창날이 옆구리를 파고들고, “내가 목마르다.”라고 부르짖은 그 고통은 실재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용서하셨기 때문에 용서의 어려움을 이해하십니다(눅 7:41-48).

시몬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신 여자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여자는 천하가 다 아는 죄인이었습니다. 여자는 값비싼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느낄 때 눈물이 흘러 주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머리를 풀어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시몬은 필요한 것도 없고 사랑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죄는 미워하셨으나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도 용서하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그는 용서의 어려움을 이해하셨습니다. 용서해 보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처럼 “주여 내 형제가 내게 범죄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 묻고 싶을 때, 주님의 십자가상의 기도와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확실한 보증을 받으셨기 때문에 확실한 보증의 필요성을 이해하십니다.
  
원수의 위협은 주님도 흔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확실한 보증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밤새 기도하신 것입니다(눅 6:11-13). 그가 확실한 보증을 받으셨으므로 확실한 보증의 필요를 이해하십니다.
 
자살하려던 여자가 한 가지 이유로 마음을 바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한 가지 이유란 이해해 주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를 구해낸 경찰관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어디 사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해해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은 압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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