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훈 장로(수필가)


코로나에 걸린 줄 몰랐다.

나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아주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 직장에 다니면서 나는 관리자로서 솔선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방역수칙을 세심하게 지키며 스무 번도 넘는 진단 검사에서도 넉넉히 이상 없음이 확인되었다. 세 차례나 백신 접종도 마쳤다. 그런 내가 코로나에 걸리다니.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중이 모인 곳에 가지도 않았고 고작해야 교회 새벽기도회와 공원 둘레길을 몇 차례 산책한 것밖에 없었다. 

벌써 한 달 넘은 지난 일이 되고 말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에 잔기침이 나고 목이 아팠다. 몸이 으스스한 게 몸살 기운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연로한 의사는 사무적으로 진찰했다. 그러더니 한 번 코로나 진단 검사해볼까요? 물었다. 한 십 분쯤 기다렸다. 초조하지도 않았다. “음성이 나왔는데요. 그냥 몸살약 처방해 드릴게요. 심하면 한 번 더 오세요!” 그게 전부였다.

목은 더 아프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열은 높지 않았다. 두통 증세도 없었다. 약을 먹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동네 가게에 들러 자가 진단 키트를 샀다.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줄이 더 나왔다. 희미해도 양성반응이라고 설명서에 작은 글씨로 쓰여있었다.

이제 상식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가서 다시 한 번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국가적인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락없는 환자가 되고 말았다. 화장실에 갔더니 변도 심한 설사는 아니더라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내와 스스로 분리했다. 먹는 것이 문제였다. 아내는 잘 먹어야 한다는데, 하면서 더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 맛이 없다. 혀의 느낌이 없었다. 맵고 짜고 달고 시고, 맛을 느껴야 하는데 밋밋하다. 게다가 냄새를 맡아도 예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제 침을 삼키려면 목이 더 따끔거리고 묵직한 게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기침 소리도 잦고 커졌다. 아내는 아내대로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 잘 버티던 아내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급기야 병원에 다녀오더니 어수룩한 지아비의 길을 따라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3년 가까이 온 세계에 들끓고 있는 코로나19이다. 일찍이 이런 감염병 사태가 없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2,500만 명 가까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2만 7천 명 넘게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지난 내 일기장을 보면 2020년 봄부터 머리글에 그날의 코로나 확진자 발생 인원을 써 놓고 ‘속히 이 땅에 코로나 감염병이 멈추게 하소서.’ 한 줄 기도를 자주 써놓았다.

맛을 모르다니! 

감각은 신앙의 지표이다. 내 모든 감각, 내 모든 세포가 뭉쳐 내 몸을 이루었다. 살아 있다는 증표이다. 그렇다면 내 몸을 통하여 나의 주인을 섬기고 있는가. 그러기 전에 나는 내 몸을 잘 가꾸고 보존하고 잘 다스려야 한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인 까닭이다. 그래서 내 몸의 건강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의 일, 곧 사역(使役)이란 말에 공감한다. 바라기는 내 몸의 지체가 온전하여 지체마다 세포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기를 간구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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