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지난 종려주일 저녁, 스타벅스에서 차를 한 잔 시켜 놓고 지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노숙자 차림의 한 사람이 들어왔다. 무척 남루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고 커피 한 잔을 시켜서는 밖에 나가 한쪽 벽 구석에 쌓아 놓은 보따리더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시는 모습을 따라가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들킨 듯 겸연쩍어 얼굴을 돌린 나는 차가 식는 것도 잊은 채 상념에 젖었다.

석양이 뉘엿뉘엿해질 때쯤이면 길거리에 나뒹구는 나뭇잎들과 더불어 찌든 보따리를 든 노숙자들이 잠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이동한다. 개중에는 좀 더 살림살이가 많아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나름대로 정해진 곳이 있는 경우도 있겠으나 또 하룻밤 잘 만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괜찮겠다 싶으면 달팽이처럼 지고 다니던 보따리를 풀고 때에 찌든 포대기를 꺼내 지치고 고단한 몸을 덮고 하루를 마감한다.
    
누군들 살면서 나름대로 눈부시게 화려한 날이 없었겠는가. 어렸을 적엔 야무진 꿈도 있었을 거고 커서는 비록그 꿈을 다 이루진 못했어도 그것을 향한 부단한 도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노숙자가 될 거라고 꿈에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살다보니 어떻게 거기까지 추락했을 게다. 실제로 잘 나가던 중견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에서 밀려나 전전하다 노숙자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30년간이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프레드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어느 날 해직당한 그는 더 이상 아파트에 살 형편이 되지 않자 낡은 캠핑카로 거처를 옮겼지만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그나마 그는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나은 처지다. 그 역시 자신이 노후에 집도 없이 생활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어느 날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이렇게 살아보기 전까진 이렇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며,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즈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보면 내게도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소유한 것들도 어느 날 내게서 걷혀갈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두려워지면서 겸손을 생각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삶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 중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모든 삶의 원리는 변함이 없고 각자가 지닌 존엄성은 물질적인 성과와는 관계없는 인간다운 품격이어서 어쩌다 대열에서 밀려나 처졌다 해도 그 가치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저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도 가끔은 자신을 존중하고 자기 에게 대접할 커피를 사기 위해 당당히 줄을 서서 돈을 내면서 스스로를 확인해 보고 싶었는지 누가 알랴. 그것이 자칫 남에겐 사치로 비춰질진 몰라도 그들도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예의를 갖추고 싶어 하는 마음은 똑같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소유한 것만으로 쉽게 속단하는 편견에 너무도 익숙해서 정작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처지엔 눈과 귀를 닫는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별다른 사람들인 양. 이제 밤이 더 깊어지면 나는 편히 잠잘 곳이 예약되어 있지만 저들은 또 어디에서 하룻밤을 자고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할는지. 차는 이미 다 식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