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마가 선교사(볼리비아)


죄는 돌과 같다. 죄성은 차돌과 같다. 어쩌면 죄라는 돌, 죄성이라는 돌이 가장 강한 돌인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으로 죄라는 돌, 죄성이라는 단단한 차돌을 깨부술 수 있을까? 

율법이라는 망치는 솜 망치다. 겁만 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율법이라는 솜 망치는 죄라는 돌, 죄성이라는 돌에 눈꼽 만큼의 금도 가게  할 수 없다. 오직 은혜라는 쇠망치만이 죄를  부술 수 있다. 오직 은혜의 쇠망치만이 죄성을 다 깨부술 수 있다. 은혜는 율법보다 몇천만 배, 몇억만 배 더 강하다.

로마서 7장 후반에서 사도 바울은 죄성을 자극하는 율법에 대해 고백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율법은 "너는 죄인이야"라고 강력히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만이다. 그 이상 율법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으로 율법은 끝이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 최선의 열심과 의지로 죄와 격렬한 사투를 벌이지만, 늘 죄에 흠씬 두들겨 맞고 다운당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절망적인 자신을 향해 그는 소망을 발견한다. 절대 절망 속에서 절대 희망인 은혜를 발견한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4,25a).

사람들은 율법이 강하고, 은혜는 약하다고 생각한다. 용서의 은혜, 죄 사함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는 도리어 사람을 방임과 나태에 빠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은혜, 용서의 은혜를 진정으로 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수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라는 은혜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의와 교만으로 똘똘 뭉쳐서, 율법적 기준과 가치관으로 교회를 핍박하여 성도들을 죽이던 무지막지한 사울을 복음의 전도자로 변화시킨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혜와 사랑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복음의 원수, 교회의 핍박자, 성도들을 무수히 죽인 살인자였던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심판하시거나 지옥에 던지시지 않고,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셨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4-18).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울의 이름을 아셨고, 부르셨다. 사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그를 아셨다. 무지와 교만으로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파괴하고 있던 사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고 말씀하신 것은 교회와 한 몸이신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울을 심판하시지 않고 용서하신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의 내면 깊이에 있는 알 수 없는 고통,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고통을 다 감지하고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사울은 다만 두 손 들고 엎드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극악무도하게 교회를 핍박하던 그의 교만과 질풍노도의 분노, 미움의 폭풍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 십자가 은혜였다. 그 은혜가 사울의 모든 교만과 자기 의와, 미움과 분노의 바위들을 한순간에 다 깨뜨려 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단단한 쇠망치다. 그 어떤 단단하고 강한 죄도 다 부수기 때문이다.

내면의 차돌 같은 죄의 본성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할 일은 다만 자신의 그런 죄에 절망하고 스스로 그런 죄를 부술 힘이 없음을 인정하고 십자가 은혜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두 손 들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는 사람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쇠망치로 부수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신다. 사울을 사도 바울로 변화시키신 것처럼.

가장 강한 은혜의 쇠망치 앞에서 부서지지 않을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내면의 강한 죄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약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스스로 그 죄를 이기려 하고, 오직 은혜의 힘만 의지하지 않는 내면의 교만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로 일생을 겸손과 생명을 드리는 희생으로 헌신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그의 인생을 요약하며 고백한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매일 매일을 주님의 용서의 은혜 안에서 일생 십자가 용서의 은혜를 증거하는 자로 살게 도와  주소서!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