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두, 남서 대학 학생들이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중국 청두, 남서 대학 학생들이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이 11월 30일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고인은 천안문 민주화 운동 직후인 1989년 6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직에 오른 후 2002년까지 13년 동안 중국을 이끌었다.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의 일환으로, 11월 29일 밤 광둥성 광저우 하이주구에서 시위가 벌어져 시위 진압 경찰관과 충돌했다. 시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야기하는 봉쇄 정책에 분노하고 있다.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중심지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했다. 당시 소방관들이 현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이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반대 시위가 시작되었다.
 
보통 중국의 시위는 지역 관리들을 대상으로 일어나는데, 현재의 시위는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을 겨냥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시위를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이후 가장 심각하고 광범위한 불안‘이라고 불렀으며, 시진핑 주석은 집권 이후 ’가장 가혹한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묘사했다. 

CNN은 현재까지 수도 베이징과 금융의 중심지 상하이를 비롯해 중국 17개 도시에서 23건의 시위가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28일에는 시위의 확대를 막기 위해 중국의 대학들이 학생들을 집으로 보냈고, 경찰이 베이징과 상하이에 포진했다. 최근 보건 당국자들은 코로나19 제로 정책의 영향을 인정하고 ”가능한 한 빨리" 봉쇄를 해제하여 시민의 불편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뉴욕 타임스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제조업 국가이기 때문에 시위가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주입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다우 존스 산업 평균 지수는 28일 500포인트 하락했으며, 29일에도 별 변동이 없었다. 애플은 허난성 정저우 폭스콘 공장의 노동자 시위로 ’아이폰14‘ 600만대의 생산이 타격을 받았다. 

중국 내 불안은 사상이 세상을 바꾼다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사실을 보여 준다. 시진핑의 정치 체제는 공적 생활과 사생활의 모든 영역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 민족주의 위에 세워졌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개인은 사회 발전의 수단이며, 또 사회 발전은 개인에게 이익이 된다. 그래서 국가는 경제적 혹은 의료적 영향에 상관없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 수 있다.

일례로, 중국 공산당은 더 효과적일 수 있는 서구의 백신을 수입하는 대신에 중국에서 개발한 백신을 사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에 대처하는 방법을 바꾸라고 촉구했으나, 중국은 더욱 엄격한 봉쇄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러한 무신론적인 체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오히려 충성하는 관료들에 둘러싸인 단일 통치자에게 독재 권력을 부여한다. 또 그러한 체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거룩한 존재(창 1:26-27)가 아니라 국가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 여긴다.
 
몇 년 전 기업 윤리에 관한 세미나 연사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으로 그들의 가치관을 경험했다. 참석자들은 그들의 체제에 만연한 부패 문제를 다루어 주길 원했다. 그들은 뇌물, 신원 도용, 시장 성과 조작이 비즈니스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으며 그들의 미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그들의 무신론 문화에는 이러한 관행에 대처할 객관적인 윤리가 없었다. 그들은 국가의 권위에 맞서는 개인의 가치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성경적 세계관의 포기가 미국의 미래에 위협이라는 경고를 하기 위함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말은 옳았다. “우리 가운데 다수는 돈과 직업, 지위, 상품, 오락과 스릴을 믿었다. 우리 가운데 다수-사회 전체-는 하나님을 피해 가려고 노력했으며, 이제 피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고, 십계명을 떠났고, 산상수훈을 떠났기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다. 지금 개인으로서의 우리, 문화로서의 우리는 비극적인 결말을 빚고 있다.”

문화적 위기에 대한 답은 성탄절에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물은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선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오셨다(요일 4:8).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다.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고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 1:12).

질문은 우리가 성탄절이라는 선물을 연중 공휴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삶 속의 현재형 실제로 만들 것인가이다. 

우리가 전자를 선택하면, 우리는 기독교적인 국가 기반을 포기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타락하고 죄 많은 인간이 자신의 삶과 국가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배제하는 곳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후자를 선택하면,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나신 분이 우리의 마음과 삶을 다스리시며, 우리의 삶을 변모시키신다. 오스왈드 체임버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조건 없이 그리스도께 헌신할 때,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외적으로 하신 모든 일을 내 안에서 행하신다.” 

오늘 어떻게 개인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헌신할 수 있을까?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11월 30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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