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마가복음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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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주의(主義)”라는 것이 너무나 많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편협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쾌락주의, 이상주의, 현실주의, 박애주의, 비판주의, 무슨 주의 등등 일일이 들자면 한이 없다. 이런 주의들은 각기 제나름대로 이론도 서 있고, 체계도 어느 정도 잡혀서 이미 인간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크게 나누면 둘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인간 생활에 유익을 주는 주의요, 다른 하나는 해독을 주는 주의이다. 가장 고상한 것이 있는가 하면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것도 있다. 사회성을 띤 것도 있지만 극히 개인적인 것도 있다. 윤리성을 지닌 것도 있고 종교성을 띤 것도 있다.
그 종교성을 띤 것 중에 “고르반주의”라는 것이 있다 이 귀절의 열매는 “고르반”이란 말에 걸려 있다. “고르반”이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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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반”이란 말은 유대인의 용법으로는 두 가지 단계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본래 이 말은 선물을 의미하는 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는 물건을 표시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르반이 된 물건은 제단에 올려놓은 물건과 같이 일반적인 목적이나 사용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다. 만일 사람이 금전이나 재산의 얼마를 하나님께 바치려고 생각하면 고르반이라고 언명했다.
이것이 후에 악용되어 일반적인 맹세가 되어 버렸다. 가령 부모가 긴박한 처지에서 도움을 청해 왔을 때 “아무런 도움을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바친 것이므로 드릴 물건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럴 때 고르반되었다는 맹세는 이미 타락해 버린 맹세요 그 말은 구실에 지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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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분명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쳤는데 바리새인들은 고르반(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불효했다. 그리하고서도 그들은 고르반이라고 불러놓은 물건을 부모에게는 드리지 않으면서 자기 이익과 욕망을 위해선 마음대로 사용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것을 지적하셨다. “너희가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마가 7:13). 고르반(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이냐? 그러나 이것이 바리새주의와 합작을 하고 나설 때, 이 고르반주의는 부모에게 불효하고, 사람과 원수를 맺고, 교회를 분리시키고, 자기 교권을 합리화하는 일에 사용되는 흉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서 고르반주의를 뿌리 뽑자. 그리스도교는 형식이 아니고 내용이며, 의식과 조문이 아니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에 있다. 그리스도교는 손을 씻는 종교가 아니라 마음을 씻는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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