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준비와 연구를 위해 지난 봄 미국으로 건너 간 후 처음 도서관에 간 날 우연히 잡지 <소저너 sojourners>에서 짐 월리스(Jim Wallis)의 “정의를 위한 부흥(Revival for Justice)”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는 이 글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영화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 영화에 대해 대강 들은 적이 있고, 또 올해 서울기독교영화제를 생각하며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 보았다. 영화는 이미 2006년 파사데나(Pasadena)에서 열린 영화 컨퍼런스에서 개봉되었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상영되지 않았고 좋은 기독교 영화라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영화에 대한 기독교적 비평이 비교적 잘 소개되어 있는 몇몇 기독교 관련 사이트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정작 영화를 볼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이번 <제5회 서울기독교영화제>가 프리미어 상영을 결정하고 영화를 수급하는 일에 성공하여 미리 볼 수가 있었다.

영화를 본 후, 월리스가 왜 글의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지 잘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정의’와 ‘부흥’이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을 생각해 보니 그의 글에 더욱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 비평가 브라이마이어(Russ Breimeier)는 이 영화가 <불의 전차>나 <섀도우랜즈 Shadowlands>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 비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들을 비범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었음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평했다. 실제의 인물 윌리엄 윌버포스는 18세기 후반 21세의 나이로 영국 하원 의원이 되었다. 영화는 윌버포스가 개인적인 신앙적 결단을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인 정치 행위에 연결하는지 잘 보여준다.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을 통해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그가 성직자의 삶을 살려고 하자 그의 동료이자 나중에 수상이 되는 윌리엄 피트는 이렇게 묻는다. “너의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윌버포스는 정치인의 길을 걷지만 결코 그에게는 그것이 신앙과 별개의 길이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 같은 것이라는 것을 동료 의원들에게 외치며 그는 노예폐지 법안을 제출하고 정치적 투쟁의 길을 걷는다.

이 영화의 제목이 된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원작자 존 뉴턴은 전직 노예선의 선장이었다. 그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자신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를 만들었고 이를 윌버포스에게 전해주며 정치인 윌버포스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말해준다. 젊은 정치인 윌버포스는 노예폐지 법안을 제출하면서 대중과 동료 의원들에게 인기 없는 사람이 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특별히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등의 여파로 나라가 혼란스럽고 전쟁의 위기까지 겹칠 때 그는 국론분열을 부추기는 선동가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의 뜻을 굳히지 않고 생명의 평등을 외친다.
마침내 1833년 모든 노예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그가 어떻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왔는지 영화는 지루해질 법한 역사 이야기에 드라마적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집중도를 잃지 않는다. 감독(Michael Apted)은 또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실패와 경험들을 플래시백으로 처리하여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몇 장면, 즉 윌버포스가 조용하게 하나님을 묵상하는 장면, 노예선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는 장면, 노예선 선장이었던 뉴턴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장면, 윌버포스의 결혼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불려지는 장면 등은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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