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냐, 창조냐? 이는 인간 이성과 과학적 방법으로는 영원히 결정할 수 없는 질문이다. 어느 쪽을 믿느냐 하는 것은 선택이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신이 있다고 믿고 사는 것이 좋다’고 고백한 칸트가 생각난다”(193쪽). 성경과 과학 특히 창세기의 창조 기사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는 우주, 태양, 지구 그리고 생명 기원 문제를 놓고 그 동안 대립적인 입장에서 많은 갈등과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본서에서 ‘성경은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려는 책이지 결코 하늘에 있는 천체들의 운행을 말하려는 책이 아니다’라고 한 갈릴레오의 고백을 상기하면서, 성경과 과학은 그 방법론이나 근본 목적면에서 대립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상호보완적임을 지적하고 강조할 것임을 밝혀 둔다(8쪽).

4월은 과학의 달이라 하여 한국에선 각종 행사가 펼쳐진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어느날 우연히 대폭발에 의해 시작된 것인가? 아니면, 조물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인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이 6일 동안 창조되었고 지구의 역사는 6천 년 정도인가? 아니면, 수많은 세월이 흐르며 만물 중에서 적응하고 생존한 것들이  살아남아 오늘날의 모습을 띠는 것인가? 또, 이도 저도 아니고 두 극단의 생각이 조화롭게 통합될 수는 없는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오늘날 일반인은 물론이고 기독교인들도 19세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 말하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알게 모르게 답하게 된다. 오늘날의 성인들은 진화론을 배우고 자랐고, 우리 자녀들도 학교에서 진화론을 여전히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반대하는 창조과학의 물결이 20세기 후반부터 다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 등장한 ‘지적 설계’로 과학의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혼동하기도 한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의 생명공학 교수로 활동하던 김정한의 <과학자와 함께 읽는 창세기 이야기(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를 통해 앞서 말한 어려움과 혼란스러움을 풀어보자. 학교에서 배운 다윈의 진화론이 쉽게 수긍이 간다는 자녀의 말을 들은 글쓴이는 그때를 계기로 한국창조과학회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세미나와 성경공부를 통해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의 하나가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천지창조의 창세기 1장부터 바벨탑 사건의 11장까지 성경 구절을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과학자와 함께 읽는’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과학적 지식이 전개되고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도 적절하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원어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어 성경 연구 그 자체로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여러 가지 좋은 사례 중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주신 무지개에 관한 부분을 소개한다.
“… 무지개를 과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물방울 속으로 햇빛이 들어가서 두 번 굴절하여 빛이 파장 별로 나누어지는 현상이다. 물방울이 마치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한다. 햇빛을 프리즘으로 통과시키면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일곱 가지 색깔로 나누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무지개의 한 가지 물리적인 현상을 설명할 뿐이지 무지개가 상징하는 의미, 무지개가 우리 마음속에 전달하는 아름다움과 평화 등 무지개의 전부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는 비와 햇빛이 동시에 있을 때만 생긴다. … 하나님은 ‘내 무지개’라는 표현을 사용하셔서 ‘너희들이 무지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무지개의 주인은 나다. 내가 무지개를 만드는 기적을 연출하는 창조주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 무지개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비와 함께 햇빛이 있을 때만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비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햇빛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하나님이 연출하는 소위 자연 현상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자연 현상을 단순한 물리적인 현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향연으로 생각하면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164~166쪽). 글쓴이 자신의 자연과학적 지식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통합된 좋은 예라 하겠다. 

또한, 각종 도표(고대인들의 우주관, 노아 홍수의 전개과정, 창세기 10장의 나라들, 족장들의 수명 등)는 성경을 언뜻 읽어서는 정리나 파악이 잘 안 되는 부분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전공을 살려 ‘현대과학의 눈으로 보면…’이라는 여러 칼럼들을 통해 과학과 신앙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지 잘 소개하였다. ‘인간복제와 기독교 윤리’‘하나님의 설계와 환경 파괴’등 여러 칼럼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주제 ‘진화냐, 창조냐?’의 일부를 소개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우주와 자연을 관찰하여 발견한 자연 법칙은 별, 행성, 달의 운동에 관한 것이나 DNA의 정보가 단백질로 번역되어 생명 현상을 연출하는 과정이나 모두 자연 현상의 ‘운행 법칙’(operational law)이다. 이것은 우리가 발견하고 있는 우주와 생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하는 질문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태양계와 은하계, 아메바와 사람이 어떻게 해서 현재 상태로 조직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답하기 위해서는 ‘조직 법칙’(organizational law)을 찾아야 한다. ...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발견한 조직 법칙은 원자나 분자의 우연에 의한 이합 집산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태양계와 은하계는 고사하고 지구의 존재도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단순한 단세포 생명체인 대장균의 조립도 상상할 수 없다. ... 무신론적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조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중 속에 파고들어 유신론적 성경적 세계관을 파괴하는 데는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191~193쪽).

현대인들은 종교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허황된 것이며,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과학이 옳은 것이라는 교육을 받았고,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 앞서 말한 진화론적 세계관에 더해 17,18세기의 계몽주의 이래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는 사고의 연장 선상이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은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과학자인 글쓴이가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고전 1:21) 우리는 이성을 앞세운 증명의 가부를 떠나 하나님 앞에 그저 겸손할 따름이다.
사실 책자는 창세기 앞부분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일반인에게 익숙한 창조와 진화를 중점으로 소개하였음을 밝혀둔다. 아울러 책이 나온 때가 1997년이므로 그 동안 과학 이론의 변화가 많이 있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글쓴이의 관점이 여전히 유효함을 또한 밝혀둔다. 다만 글쓴이가 활동한 한국창조과학회 내에서도 지구의 나이 6천년 및 노아의 홍수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이 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하나님의 창조 그 자체에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하는 인간들의 또 다른 노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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