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가 광우병과 연결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급하게 서두른 협상이었고, 먹는 것과 같이 민감한 사안을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은 까닭인데 문제의 본질은 온데간데 없다. 광우병에 대한 온갖 불확실한 정보가 난무하다가‘괴담’이란 말까지 등장하더니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의 시위가 계속된다. 이성적인 대응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말을 했다간 집단적으로 인신공격을 받는 상황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엄격한 FDA(미국 식품의약국) 규정을 말하고 ‘미국산 소고기 문제 없다’ 라고 말했다가는 매국노로 몰리는 분위기이다. 몇 해 전 황모 교수의 줄기세포 파동 때, 도무지 정상적인 대화와 판단이 안 되던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한 명, 한 명의 보통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면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군중심리는 도대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영화 “The Mist”의 배경인 평화로운 어느 마을에 밤새 비바람이 치더니 큰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 집과 차를 덮치는 등의 피해를 입는다. 호숫가에 있는 보트 선착장이 큰 나무에 부서졌고 평소에 보지 못하던 짙은 안개(mist)가 호수를 뒤덮은 것이 뭔가 심상치 않다.

주인공 데이빗은 집안 정리를 아내에게 맡기고 아들 빌리를 데리고 식료품을 사러 마을로 나간다. 마을로 가던 길에 긴급 출동하는 군인 차량들이 보이고, 휴가 가려는 군인들에게 원대 복귀를 알리는 헌병이 나타나는 등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이다. 마트에서 데이빗이 계산할 차례가 되었을 때 안개가 온 마을을 뒤덮으면서 갑자기 전기가 끊어진다. 마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놀라고 있을 때 안개 속을 뚫고 피를 흘리는 한 사람이 달려오며 외친다. “안개 속에 뭐가 있어요! 나가지 말아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던 사람들은 졸지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주인공 데이빗은 마트의 발전기를 손보러 갔다가 밖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잠시 후 마트 종업원들이 창고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무언가 있다고 데이빗이 말리지만 다들 비웃는다. 무시하고 문을 열고 나간 한 젊은 점원이 정체불명의 괴물의 공격을 받게 되고, 데이빗과 다른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점원은 저 안개 너머 괴물의 밥이 되고 만다. 마트 안으로 돌아온 데이빗과 종업원 일행은 촉수와 같은 이상한 괴물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이곳에 있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말한다.

괴물 운운하는 뜻밖의 상황이 상식적으로 수긍이 안가는 일부 사람들은 허튼 소리 말라며 마트 문을 열고 나간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남아있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이 안전을 위해 자기 차에서 총을 가져오겠다며 밖으로 나간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잡아 당기라고 몸에 밧줄을 묶고 나갔는데 잠시 후, 밧줄이 팽팽해지더니 밖으로 계속 빨려나간다. 마트 안 여러 사람들이 밧줄을 잡아당기자, 잠시 후 그 사람은 상반신이 없어진 채로 돌아온다. 모든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괴물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마트 안은 공포에휩싸인다.

영화의 반전은 성경을 든 카모디 부인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그녀는 요한계시록 15장에 연기가 차게 되고 일곱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죄 사함 받으라!”고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세례 요한처럼 보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카모디 부인은 정신이 불안정하다고 여기저기서 수군대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이다. 정말 광신도로 보이는 연기가 일품이다.

다음에는 큰 메뚜기 같은 놈들이 마트 창문에 들러붙더니 유리가 깨지고, 마트 안은 작은 괴물들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괴물에 물린 한 사람은 얼굴이 흉측하게 변해간다. 이제 사람들은 마트 안도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로 하룻밤을 지샌다. 마침내 이 재앙이 군 부대의 ‘Arrowhead’라는 비밀작전 때문인 것이 알려지고 카모디 부인의 목소리는 높아간다. 낙태며, 줄기세포 등 인간들이 하나님께 오만한 결과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사람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제물로 마트 안에 있는 한 군인을 지목한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군인을 잡으려 하고 칼로 찌르고 문 밖으로 내동댕이친다. 문을 열어달라고 군인이 사정하지만 잠시 후 괴물이 그를 끌어가고 마트의 유리문에는 피 묻은 손자국만 남는다. 평소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일이 마트 안의 집단적인 공포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마트 안은 당초 데이빗을 비롯한 점원들이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공포 가운데 심판을 외치는 카모디 부인의 영향력 하에 넘어갔다. 카모디 부인이  데이빗의 아들을 다음 제물로 지목하자 마트 안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한다. 괴물은 밖에 있는데 마트 안의 사람들끼리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마트라는 좁은 공간은 피난처이기보다 공포가 확대 재생산되는 곳이 되었다. 마녀사냥이나 중국 문화혁명의 홍위병 같은 비이성적인 광풍이 마트 안을 휩쓰는 모습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소는 구약시대 희생 제물에 사용된 중요한 동물 중의 하나였고, 일상 생활의 농사, 짐 나르기 등에 유용하였다. 또한, 일반 평민들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동물이었다. 굳이 성경을 인용하지 않아도 한국에서는 ‘소 키워 자식 대학 보낸다’고 할 정도로 재산의 하나로 여길 만큼 값이 나가는 동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매일의 식탁에서 이 귀한 것을 맘만 먹으면 맛볼 수 있다. 문제는 풀을 먹고 자라는 초식 동물인 소를 동물 사료 그것도 소로 만든 사료를 사용해 육식 동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창조 질서에 반하는 인간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바벨탑을 쌓는 거와 다를 바 없고, 결국 광우병과 같은 재앙을 낳는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말한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5:17).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풍부한 먹을거리를 놓고 싸운다. 이웃의 밥상은 잘 모르겠고 내 밥상이 잘못 되는 꼴은 못 본다고 외치는 오늘의 모습 속에서 광우병은 밖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내 마음 속에서 시작되는 것을 본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육식을 줄여야 하는 건 아닌가? 잠시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국민과의 소통이 잘못되었다고 정부가 뒤늦게 자성하는데 반대하는 국민들 역시 일방적인 소통으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구촌 글로벌 시대를 살면서 한반도라는 지역을 넘어 사고할 때이다. 좁은 공간 안에서 우리끼리 치고 받고 할 것이 아니고, 이제 끝이 안 보이는 싸움을 내려놓고 또, 집단이라는 최면을 떨치고 차분히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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