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화 속 좋은 교사와 나쁜 교사

영화에 비쳐지는 ‘좋은 교사’와 ‘나쁜 교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위에서 키팅선생님과 아미드 선생님을 비교해 보았지만 이는 교육방식의 차이일 뿐 좋고 나쁘다의 가치 판단을 하기에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느껴진다. <우리교육>지에 실렸던 영화 속 좋은 교사들이 보여주는 나쁜 교사들과의 ‘1인치 차이’에 관한 글(정윤경: 2003)을 통해 그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좋은교사는 Play 버튼을 누르고 나쁜 교사는 Stop 버튼을 부른다.

  영화<짱>에서 마기풍 선생은 첫 출근날 담을 넘어 학교로 들어온다. 지도부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문제아반의 대표적인 말썽꾼들은 차마 이 아저씨가 새로 온 담임선생님이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이상한 아저씨가 틀어준 오디오에서 나온 음악에 맞쳐 흥겹게 춤을 춘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아이들과 한참을 어울리던 마기풍 선생 왈 “ 이제 가자. 나? 3학년 10반 담임이야.”
 
  현실감이 떨어지는 캐릭터 설정은 가끔 실소를 머금게도 하지만, 마기풍 선생의 좌충우돌 유치찬란한 행각에는 뚜렷한 일관성이 존재한다. 아이들의 언어, 아이들의 눈높이로 돌아가 선악을 판단하지 않고 함께하는 것이다. 집단 커닝 사태로 학급 전체가 교무실에 불려와 무릎꿇고 앉아 있다가도 정수기 물 떨어지는 소리를 계기로 함께 ‘난타’공연을 벌이고야 하믄 못말리는 교사와 제자들. 마기풍 선생은 아이들이 자신의 억눌린 화를, 꺾여진 희망을 다시금 불러낼 수 있도록 자꾸만 자꾸만 Play 버튼을 누룬다.

  반면 <볼륨을 높여라>에 나오는 학생주임 선생은 누군가가 누른 Play 버튼을 Stop시키는 존재다. ‘해피해리'의 해적방송이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도무지 더 도전할 무언가가 없어 방황하는 아이들의 억눌인 분노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게 되자 학교는 해피해리’의 전날 방송을 녹음해 와 틀어대는 아이들로 가득 찬다. 강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쏟아지는 학교에 대한 비반도 문제지만 어떻게 입수한 것인지 학교측의 부당한 조치들을 고발하는 목소리도 위협적이기 그지없다. 아이들은 툭하면 근신과 퇴학조치를 내리는 근엄한 관리자들을 조롱하는 해리의 목소리에 점점 빠져들고, 그럴 때마다 ‘한번만 더 걸리면 퇴학인 줄 알아라’하고 협박하는 학생주임 선생님은 여기저기서 볼륨을 높여대는 아이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죽이기 위해 부지런히 Stop버튼을 부른다.

좋은 교사는 ‘미래’를 말하고 나쁜 교사는 ‘여자’를 말한다.

여교사와 여학생 사이. 동 시대를 여성으로 살아가는 동료이자, 학교 안에서는 스승과 제자다. <위험한 아이들>의 루엔 조엔 선생은 학급에서 가장 뛰어나 지적 능력을 갖춘 캘리가 졸업을 포기하고 미혼모센터에 들어갈 생각이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남자 친구가 그것을 원한다고, 아이 키우는 방법을 배우러 가겠다고 말하는 캘리. 하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그녀가 그런 식으로 학교를 떠나는 것을 루앤 선생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전학가지 않아도 된대. 그런 교칙은 없어. 학교에 남고 싶지 않은거니?”
“있고는 싶지만 아기돌보는 법을 배워야 해요. 집도 마련해야 하고요”
“캘리, 네 미래를 버리지 말아라”
“킴벌리 말이 맞네요. 선생님이 만류할 거라고 했거든요. 또 선생님이 남자를 싫어할 거랬어요. 결혼도 안하고 남이 하는 것도 말리고 그래서 늘 남의 인생에 참견하다고요”
“킴벌리가 틀렸어.난 결혼했었거든. 임신도 했었지.이혼했어.임신중절도 했고, 남편이 날 때렸거든. 시작이 잘못됐는데 계속 그렇게 살아선 안 돼”

 한편 <여고괴담>의 늙은 여우는 조금 다르다. 공부 잘하고 예쁜 은영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가진 것 없는 무당의 딸인 진주에게는 악몽 그 자체인 존재다. “여학생 교복이 이게 뭐야?”조금 때를 탔을 분인 교복 칼라를 잡아당기며 매몰차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는 냉정한 멸시가 가득 담겨 있고, “이게 뭐야, 향내 아니야? 골고루 한다. 누가 무당 딸 아니랄까 봐” 진주의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왕따를 시킨 것도 늙은 여우의 작품이었다. 모든 게 은영이가 도움 안 되는 친구와 놀다가 성적이라도 떨어질까 하는 걱정에는 비롯된 일. ‘천한’ 여자와 ‘귀한’ 여자를 가르는 그녀의 잣대는 절대적일뿐더러 맹목적이기까지 하다.

4) 한국영화 속에 나타난 교사에 대한 편견

 한국영화 속에 나타난 교사에 대한 편견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체육교사에 대한 편견이다. 이보영(2001)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영화속의 체육교사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고 비교육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분석대상으로 삼았던 <신라의 달밤><체인지><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세 작품 속에서는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욕설을 퍼붓고, 저속한 말을 자주하며, 교육적이지 못한 태도와 언행으로 지도하는 체육교사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체육교사를 포함한 주변인물이나 일반적 시각에서 체육교사는 무시당하고 있으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부담 없이 대하거나 가볍게 취급해도 무관한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영화의 흐름상 대중에게 웃음을 자아내거나 비논리적인 엉뚱한 전개가 필요할 때, 순간의 극복을 체육교사에게 떠넘김으로써 결국 체육교사는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 상황에 우스꽝스럽게 짜 맞추어진 캐릭터로 등장하며 동시에 문제 있는 교사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체육교사니까’라고 치부해버리는 자연스런 인식을 유도해 가는 것이다. 또한 체육교사는 학교 내에서 학생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데 있어서 카리스마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내어, 체육교사의 다정한 인간적 측면을 소외시키고 있다.

  실제 학교현장의 체육교사와 영화 속에서 그려내는 체육교사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 즉 실제와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다른 현상을 같은 현상으로 인지하도록 일상화시킨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체육교사의 비뚤어진 모습을 진짜인 양 생각하는 혼돈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가 특정신분을 무분별하게 부정적으로 매도하여 그려냄으로써 이미지를 고착하고 있는 현상은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