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Spiritual Secret of Hudson Taylor

“이제 선교사가 되려는 사람이 선교회나 자기와 친근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선교를 포기하십시오…  오직 내가 바라는 것은 내륙에 들어가 중국 옷을 입고 가능한 한 중국식으로 살아갈 준비가 온전히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선교사는 범사에 어느 때든 예수님과 중국 영혼들을 첫째 목표로 놓을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남자, 그런 여자가 있다면 너무 많을까 봐 개의치 마시고 얼마든지 보내주십시오. 그런 그들이야말로 진주보다도 값진 사람들입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선교사 후보들에게 전한 말 중에서)

100년을 기다렸다는 중국 베이징 올림픽이 한참이다. 스포츠를 통해 닫힌 사회가 더 개방되기를 기대하고 동시에 복음을 전할 수 있길 바라면서 중국 선교, 나아가 해외 선교에 큰 영향을 끼친 허드슨 테일러에 관한 책을 소개한다.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생명의말씀사 ‘92년)는 자녀인 하워드 테일러(Howard Taylor) 부부가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평이한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원 제목 Spiritual Secret of Hudson Taylor에서 ‘영적 비밀’이라는 부분을 살리지 못한 것 같다(이외에도 허드슨 테일러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 있고, 허드슨 테일러를 소개하는 아동용 책자 또한 여럿 있다).  

허드슨 테일러는 1832년 영국에서 크리스천 부모에게 태어나 신앙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가 중국 선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던 감리교의 평신도 설교자였던 때문인지 네다섯 살 때 벌써 ‘어른이 되면 선교사가 되고 중국에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일찌감치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은 것을 스스로 확신하면서 자라났다. 더 중요한 순간은 17세가 되었을 때의 회심 사건이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인에 대해 회의적이기도 했던 어느 날이었다. 부모님은 외출했고 혼자서 쉬고 있던 그는 우연히 아버지의 책장에서 큰 기대 없이 책 한 권을 골라 읽는다.

병을 앓던 한 광부가 죽기 전에 크리스천들의 방문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권면받았을 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곧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말씀에 감동받아 크리스천이 된 이야기였다.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 또한 그냥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느끼고 기도하며 회심한다. 한편, 같은 시간에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기도 응답 받은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부흥회나 예배 또는 성경공부도 아니고 홀로 신앙 서적을 읽다가 회심하게 되는 독특한 경험, 또 부모님의 기도가 허드슨 테일러의 신앙 여정에 참 중요했던 영적 비밀이었을까?

선교사로 부름 받은 것을 확인한 준비의 하나로 의사 훈련을 받기 시작한 그에게 ‘중국에 가고자 할 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 영국을 떠나기 전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라는 또 다른 영적 비밀을 보여준다. 1854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난 중국을 향해 떠났는데 오늘날엔 항공 교통이 발달했지만 당시에 영국에서 중국까지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 6개월의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배가 흔들리는 것은 예사였는데 마치 사도 바울이 선교 항해중 만났던 폭풍우를 연상케 한다. 항해중 어려운 일도 오로지 기도로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해를 중심으로 첫 선교를 경험한 그는 1860년 건강상의 이유로 영국으로 돌아온다. 휴식중에도 의사 공부를 계속하고 신약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등 선교 준비를 계속하던 그는 더 큰 도전을 하게 된다. 선교지 바깥 곧 영국이 아닌 중국 현지에 본부를 두는 선교 단체, 또 무엇보다 상해와 같은 해안 지대에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중국 내륙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놓고 기도한다. 해외 선교의 초창기에 이미 오늘날의 선교 전략에도 적용되는 큰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영국의 한 해변을 거닐던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오! 주님! 당신께서 모든 짐을 져주소서! 당신의 종이 나아갈 때에 당신께 결과를 맡깁니다.’라는 기도로 마침내 ‘중국 내륙 선교회’ CIM(China Inland Mission) 곧 오늘날의 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를 설립하여 24명의 선교사와 함께 중국을 향해 떠난다.

‘중국 전체를 복음화하고 중국의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포부로 삼은 그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선교 방법을 사용하였다. 중국인들이 서양 귀신이라 하여 선교사를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돌팔매질도 할 때였다. 그래서 그는 중국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같은 복장을 하는 것을 물론이고 소위 변발 머리를 한다. 앞부분은 깎고 뒤는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한 영국인을 상상해 보건대 현지인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 싶다. 동료 선교사들은 체면과 자존심도 없느냐고 비난했지만 오로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현지인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 겸손하게 다가갔던 것이다.

현지의 삶을 따르다가 제대로 영양 보충을 못해 아내와 다섯째 아들을 콜레라 전염병으로 잃게 된다. 아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옆에서 그는 무릎 꿇고 하나님께서 계신 영광의 자리로 가게 되었다고 감사 기도를 역설적으로 드린다.

또한 ‘필요가 있으면 믿음으로 구한다! 하나님이  채워 주신다!’ 가 그의 선교 원칙이었다. 선교사들을 모집하면서 선교회나 평소의 지인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훈련해서 자립 능력을 육성하는 것이다. 한편, 오로지 세계 만민에게(to every creature!)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허드슨 테일러의 깨달음은 미국으로 건너가 선교사를 모집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일에까지 사역이 확대된다. 당시의 부흥사 무디(Moody)와의 역사적 만남이 이때 이루어진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와 같은 이가 있었기에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다 쫓겨 나고, 다시 들어가고 하는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 중국 땅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복음 전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으리라. 90년대 이라크 전쟁과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서라도 복음이 전해졌는데 스포츠 체전을 통해서 중국에 복음이 더 많이 전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편, 허드슨 테일러와 윌리엄 캐리 같은 위대한 선교사를 배출했던 영국이 오늘날은 이슬람의 유럽 공략 전초기지가 되었고, 선교 대상국이 되었으니 못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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