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안에 불이 났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는데 부엌 살림이며 가재 도구가 불에 타 경제적 손실이 생겼다. 화재가 왜 일어났을까? 평소 히터 불을 잘 끄지 않은 부주의에 원인을 돌린다면 성격, 능력과 같은 내부적 요인이라 할 수 있고, 그날 따라 날씨가 추워서 히터를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고 말한다면 환경, 상황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자녀가 수학 성적을 나쁘게 받았다. “너는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 한다면, 수학 성적 하나로 지적 능력 부족이라는 전반적인 사항에 원인을 돌리는 것이고 “너는 수리 능력이 부족하구나!”하면 구체적인 원인을 돌아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 1980)』은 제목 그대로 평범한 미국 가정의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영화 중간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방문해 가족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오면서, 평범해 보이는 이 가정의 문제가 드러난다. 아버지 캘빈과 어머니 베스 사이에 아들 콘라드가 선다. 밝은 표정의 가족 사진이 되어야 하건만 아들은 남의 일인 듯 팔짱을 낀 채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다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찍고 어머니와 아들이 찍을 차례인데, 엄마는 남자 3대가 찍으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자기에게 카메라를 달라고 작은 승강이를 벌인다. 못마땅하고, 뭐 씹은 표정의 아들이 옆에서 기다리다가 짜증이 났는지, “God Damn! 엄마에게 사진기 줘 버려!” 하고 소리지르고 옆자리에 앉아 버린다. 순간 분위기는 썰렁!

결혼한 지 21년 된 부부에게는 원래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 벅이 보트 사고로 죽었다.  큰아들의 사망 원인을 놓고 이제부터 특별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연인즉 폭풍우 속에서 뒤집힌 보트에서 동생이 형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형은 물 속에 빠져 버리고, 살아남은 동생은 우울증에 빠져 자신의 실수라고 늘 자책하다가 급기야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수개월의 병원 입원 후 학교로 돌아온 콘라드는 말이 없어지고, 수영 선수로 연습하던 것마저 그만둔다. 형의 사고사에 대한 안 좋은 기억(trauma)이 계속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큰 아들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차갑게  대한다. 그러니까 가족 사진을 찍을 때의 해프닝은 큰 아들의 사고사 이후 작은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엄마와 아들의 갈등이 드러난 것이다.

한편, 아들 콘라드는 병원 퇴원 후에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한 시간에 오십 불 지불하는 상담을 일주일에 두 차례 받고 있다. 상담가는 그의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의도적으로 화를 끌어내어 상담가에게 소리지르며 욕하게 하는 방법까지 동원한다. 처음에는 큰 진전이 없다가 어느 날 그가 마음을 열고 형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터진다. ‘문제를 제대로 보면 바른 해결책이 보인다(Real problem has a real solution)’는 관점에서, 상담가는 형의 죽음이 그의 책임이 아니라는 조언을 해준다. 이제 상담자와  콘라드 사이에 신뢰가 싹튼 것이다.

한번은 콘라드가 병원에서 만났던 카렌에게 어렵사리 전화했다가, 카렌의 자살 소식을 아버지로부터 듣고 놀란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멋있게 보내기로 얼마 전 약속했는데 이럴 수가? 충격을 받은 콘라드는 어쩔 줄 몰라 한밤중에 상담가를 찾아간다. 콘라드는 이번 일도 자기 탓이라면서 괴로워하는데, 상담자는 과도한 책임을 지려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아니라고 조언한다.  

가까운 사람의 불행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콘라드에게 구원의 여신이 나타난다. 성가대에서 콘라드의 앞줄에 서서 그의 테너 음성을 자연스럽게 듣는 자닌이다. 자닌은 목소리가 좋은데 왜 솔로를 하지 않느냐며 콘라드를 격려한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성가곡 가사를 읊조리며 집에 돌아온다. 자닌과 볼링을 함께 치기도 하고, 자닌의 밝은 모습을통해 콘라드는 엄마를 포옹하며 사랑을 표현할 정도로 회복된다.  

아들은 회복되는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차가운 태도를 지적하며 부부간에 갈등이 생긴다. “벅의 장례식 때도 당신은 슬픈 감정은 고사하고 이 옷 입어라! 저 옷 입어라!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이야!”라면서 아버지는 그동안 쌓인 감정을 토해낸다. 따스한 말보다 단정하고 깨끗한 것만 따지는 어머니의 말에 질렸다는 것이다.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아버지의 지적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가 친척집으로 떠나자, 콘라드는 다시 한번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아들에게 다정히 대해온 아버지는 “이번에는 누구의 책임이 아니다! 너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고 소리친다. 아들은 정색하며 소리를 더 자주 지르라고 말한다. 자연스런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라고 말할 만큼 그는 회복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자가 끌어안는 마지막 장면에서 조그만 희망이 보인다.    

귀인(歸因, attribution)은 ‘무슨 결과의 원인을 ~에 돌린다’ 는 뜻으로, 자신이나 타인이 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그 원인을 탐색하는 과정이며, 귀인(歸因)의 결과는 개인의 행동에, 나아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주위에는 때로 좋은 일은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나쁜 일은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다. 그러나 나쁜 결과를 모두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는 지나치게 양심적인 태도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 조금은 남 탓으로, 또는 환경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는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우울해지기 쉬운 것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잠언 17:22). 아무쪼록 불필요한 걱정은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생각된다.  

(영화 내내 우울한 분위기의 심리 묘사 때문인지 R등급이다. 미시간 태생으로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Judith Guest의 소설이 원작인데, 일리노이 주의 스코키, 하일랜드 팍, 힐스보로 등이 언급되고, 시카고 다운타운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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