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심리

공중화장실의 문 손잡이에 붙어 있는 세균이 병을 옮기지는 않을까? 대문은 제대로 잠갔을까? 가스불은 껐던가? 하는 생각에  피부가 벗겨져라 한참 손을 씻고, 자물쇠를 열었다 닫았다 확인하고, 교회 가다 말고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행동이 나타난다. 그뿐인가? 부적절한 성에 대한 생각이나 신에 대한 불경한 생각이 떠오르면 숫자를 세어서 잊는다든지, 기도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한다든지, 죄 사함 받듯이 물 속에 머리를 담그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원하지 않는 강박 사고(obsessions)와 강박 행동(compulsions)을 반복하는 ‘강박 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는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의 일종이다. 또 실수를 용납 못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못 보고 한 가지 답만 고집하는 흑백 논리 등의 ‘강박성 성격 장애(obsessive-compulsive personality disorder)’와는 구분되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강박 장애를 교과서처럼 잘 보여 주는 영화이다. 주인공 멜빈(잭 니콜슨)의 강박성 연기가 일품이고, 상대역으로 식당의 웨이트리스 캐럴의 역할을 맡은 여배우(조디 포스터) 또한 만만치 않은 연기력으로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멜빈이 보여주는 강박성을 먼저 들여다 보자. 외출해서 보도 블럭을 걸을 땐 껌 묻은 곳을 밟을까봐 똑바로 걷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다 보니 걸음걸이가 이리 뒤뚱 저리 뒤뚱 한다.

귀가해서 손을 닦는데 비누에도 먼지가 묻을까봐 한 번 쓰고 버린다. 화장실에는 수십 장의 비누가 준비되어 있다. 씻는 시간도 한참 걸려 여행중 저녁 식사 약속을 해놓고도 예쁘게 차려 입고 기다리는 캐럴을 지치게 만든다.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집에는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할 심산이다. 문이 잠겼는지 여러 번 반복해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레스토랑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똑같은 웨이트리스 캐럴의 서빙을 받아야 하고, 자신이 직접 가지고 온 일회용 플라스틱 스푼이며 포크도 정해진 위치에 놓아야 마음 놓고 식사를 한다. 여행중 차 안에서 들으려고 준비해온 CD들은 ‘분위기 좋을 때’, ‘기분이 좋을 때’, ‘위급한 상황일 때’ 듣는 음악으로 나누어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음악을 듣자는 것인지, 정리정돈을 보여 주는 것인지 헷갈린다.

캐럴의 아이가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하는 급한 상황에도 택시의 문 여는 것을 주저하자 결국 캐럴이 직접 연다. 멜빈은 결국 맨손으로 닫지 않고 겉옷을 잡아당겨 손에 쥔 채 자동차 문을 닫고 또 발로 차서 닫는다. 먼지가 묻을까봐 항상 장갑을 끼고 다니는데 그날 따라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압권은 캐럴과 게 요리 전문 식당을 갔을 때이다. 정장을 입어야 하는 곳이어서 웨이터가 미리 준비된 양복을 빌려 주려 하지만 멜빈은 그것을 입지 않는다. 대신에 근처 양복 가게에서 양복과 넥타이까지 완전한 새것으로 사서 입고 오는데 캐럴이 다른 사람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도대체 누구와 데이트하는 것인지?  

영화는 이런 강박증을 가진 멜빈이 이웃 화가 사이먼과 식당의 웨이트리스 캐럴을 만나면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파트에서 마주친 사이먼의 애완견이 복도 카펫에 실례를 하자 질겁을 한 멜빈은 아래층으로 연결된 쓰레기함에 애완견을 던져 버린다. 엉겁결에 벌어진 일로 멜빈과 사이먼은 서로 으르렁대는데, 그림의 모델을 자청했던 사람이 강도로 변해 사이먼을 폭행하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사이먼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의 애완견을 멜빈이 억지로 떠맡게 된 것이다. 아무도 들어온 적이 없는 멜빈의 집에서 애완견이 몇 주를 지내고, 병원비로 파산한 사이먼이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떠나는 여행길에 멜빈이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또 한 사람의 동행이 있으니 멜빈이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는 캐럴이다. 그는 캐럴의 아들에게 천식과 앨러지 등 여러 지병이 있어 식당에 출근을 못하고 자신이 서빙을 못 받게 되자, 전속 의사를 붙여 주고 캐럴로 하여금 자신을 서빙하게 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로맨스 소설 작가인 멜빈이 자신의 소설을 무기로 출판사 사장에게 요구해서 가능했던 일인데, 한 사람에게 서빙 받아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인지? 아니면 캐럴에게 마음이 있어서였는지? 하도 강박적인 모습이 많이 나와 보는 사람이 좀 헷갈린다.    

세 사람의 짧은 여행을 통해, 사이먼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고, 멜빈은 사이먼에게 자신의 아파트 방 하나를 내준다. 영화의 마지막은 멜빈이 용감하게 캐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해피 엔딩이다. 무엇보다 멜빈의 강박증이 캐럴의 사랑으로 끝난 것 같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공포, 두려움, 걱정이 아니고 평화 임을 기억한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불안해 하지는 않는지?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마가복음 2:27).

나아가 바리새인과 같이 지나치게 형식이나 규칙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에 초점을 두다 보면 그 형식과 규칙으로 모기는 잡고 낙타는 걸러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가 말이다.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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