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종종 그렇게 전혀 예상치 않은 때 갑자기 찾아온다.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것은 십자가가 주어졌을 때의 태도에 달려 있다. 그 결정은 오랫동안 고려해 본 다음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평상시에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태도로 살아간다면 십자가를 피할 것이요, 경박한 태도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십자가라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피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려면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생명은 생명을 잃음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많든 적든 열매를 맺을 수 있다.”(10장 ‘구레네 사람 시몬-십자가를 등에 지고’중에서 138쪽)
 
저자인 톰 휴스턴은 신약 성경과 관련된 세 권의 시리즈를 펴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주변 인물들을 다룬 『Characters around the Cradle(베들레헴의 사람들)』, 사도행전의 인물을 다룬 『Characters around the Church(최초의 교회를 세운 사람들, 그들은 평신도였다)』와 함께 오늘 소개하는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은 사순절, 부활절과 관련된 책이다. 저자가 영국에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 혈통의 유럽인 목회자라는 점이 눈에 띈다.
영어 제목 ‘Characters’ 에서 보듯이 성경 인물들을 살펴본 책으로, 성경 본문과 배경 설명 및 저자의 상상력과 관련 예화가 들어 있어 성경을 여러 각도로 읽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목회자인 저자가 서문에서 엄밀한 의미에선 성경해석학적 연구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렇다고 흥미 위주의 가벼운 내용이 아니면서도 읽기에 부담 없게 잘 구성되어 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관련해서 성경에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는가? 잠시 돌아본다. 가룟 유다, 베드로, 빌라도, 구레네 사람 시몬, 십자가상의 두 강도, 로마 백부장, 아리마대 사람 요셉, 니고데모, 막달라 마리아, 도마,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와 같은 개별적 인물들이 있다. 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환영했다가 나중에 변했던 무리들, 유대 종교지도자들, 로마 군병들, 골고다로 가던 중 만난 여인들, 십자가  주변의 여인들, 부활 후의 여인들과 같이 특정 그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있다. 이외에도 위에 언급하지 않은 여러 개별적 인물과 그룹들이 있다.

저자는 총25장을 통해 개별적 인물들 또는 특정 그룹들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및 부활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다. 그 중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시던 길(via dolorosa)에 우호적인 만남을 가진 두 인물-하나는 이름 없이 ‘여자의 큰 무리’,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표현, 다른 한 명은 구레네 사람 시몬-을 돌아본다.
 
첫째,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부르셨던 여인들은 바로 앞에 ‘주님을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눅 23:27)라고 성경에 표현되어 있다. 저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호산나!” 외치며 환영했던 무리들이 같은 길에 서있을 텐데 유독 여인들만 언급되는 것에 주목한다. 그들은 소박한 보통 여인들로 예수님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예루살렘 여인들과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누가복음에만 나와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예수님은“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시면서 목놓아 우는 여인들에게 40년 후 예루살렘 성 함락과 파멸을 말씀하시며 무엇보다 여인들이 당할 피해를 안타까워하신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고난을 가장 많이 당하는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전세계의 노동 시간 중 67%를 여자들이 감당하고 있지만 수입은 10%에 불과하고, 자산의 1%만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150쪽). 경제뿐 아니라 전쟁, 가뭄, 기근 가운데 극심한 고난을 받는 이들도 여자들과 아이들이다. 나아가 남자들이 술에 취해 정욕을 참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때, 질서와 순결에 대적하여 못된 일을 할 때, 그 여인들과 자녀들이 얼마나 고난을 당할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힘들게 일하는 여인들과 무죄한 아이들이 오늘날 재난으로 고난당해야 합니까?’(152쪽)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이름없는 여인들에 말씀하셨던 예수님이 오늘날에도 함께 하고 계심을 말한다. 좀 넓게 생각하면 남녀노소의 구분보다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많은 분들에게 예수님은 오늘도 위로하시며 함께 하시는 것이리라.    

둘째, 채찍에 맞은 상처에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비틀비틀 힘들게 가시던 예수님의 고통을 어떤 식으로든 함께 나눈 유일한 사람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며 이름이 분명하게 언급된다. 구레네(Cyrene)는 오늘날의 북아프리카 리비아 지역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시몬은 유월절에 맞추어 본국으로 성지순례를 왔다가, 선택의 여지도 없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되었던 것이다.

시몬은 원망하거나 재수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강제로 십자가를 떠맡은 그 임무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바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기 전에 먼저 무거운 십자가부터 진 모습을 보여준다. ‘만일 평강과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면, 인생에서 원하는 만큼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그 무게를 느끼는 대신 저 멀리 밀어버렸기 때문일지 모른다’(141쪽)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아가 시몬이 진 십자가는 그저 일회성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구레네 사람이라는 소개에 더해, 마가복음에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가족의 이름까지 언급된다. 그 아들들이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았을 것이고 초대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신에게 틀림없이 주어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라. 그러면 아마 당신 아버지가 당신을 가난하게 남겨둔 것처럼, 당신도 자녀를 가난하게 남겨두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절대 사라지지 않을 유산, 즉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간 아버지에 대한 불멸의 기억을 남겨주게 될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진 후에조차 온 교회가 일어나 우리를 가리켜 복된 자들이라 일컬을 것이다.’(137쪽)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중 나는 누구에 해당되는지 생각하며 성경을 다시 읽어본다. 이랬다 저랬다 아무 생각 없는 무리들? 예수님을 배신하거나 부인했던 제자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앞장섰던 종교 지도자들? 또는 추종자들? 아니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압력에 굴복했던 빌라도? 부활의 아침을 열었던 여인들?

마지막으로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보며 다짐해 본다. 무엇보다 이름 없는 여인들과 같이 십자가를 안타까워하고,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역사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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