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남편)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잠언 5:15-20).

지난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시작된 한 골프 선수의‘여성 편력’뉴스가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온다. 지난 한 해만도 여러 정치인이나 방송 진행자 등의 불륜 뉴스가 있었지만 이번 경우 평소 모범적인 가정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많은 사람들의 실망감 내지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르고 또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능력과 덕목을 위해 자기와의 싸움에 철저했는데 정작 성욕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이번 경우, 외도한 상대가 하나 둘이 아닌 것을 보면서 일종의 성 중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성과 관련된 육체적 기능 장애가 있는가 하면 오늘 이 글에서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장애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 백년해로하는 것이 무너져가고 있는 이 때, 이전에는 남편의 외도가 문제되었으나 지금은 부인도 예외가 아닌 이 때, 남녀의 사랑과 결혼 생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랐다.
폴란드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Krzysztof Kieslowski)가 십계명 하나 하나를 오늘날의 삶을 배경으로 만든 연작 시리즈 중 여섯 번째(* 가톨릭 기준이고, 개신교는 일곱 번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Love’이다.

영화는 우체국에 한 중년 여자가 자신에게 배달된 소액환 용지를 들고서 돈을 찾으려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창구 너머 젊은 남자는 “돈이 없는데요!”라고 대답한다. 이들이 바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다. 다음 장면에선 여자가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 멀리 건너편 아파트에서 아까의 남자가 망원경으로 여자를 훔쳐보고 있다.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우아한 모습은 잠시, 식사며 옷을 갈아입는 모습까지 몰래 훔쳐 보는 관음증 환자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니 10대 후반의 그 남자가 그 여자를 짝사랑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앞서 보낸 소액환도 그녀를 보고 싶어 우체국으로 오도록 자신이 가짜로 만들어 보냈던 것이다. 다음에는 아침 일찍 우유 배달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을 동네 가게에서 듣고 남자는 우유 배달을 맡는다. 그리고 그녀의 아파트 앞에 놓여 있던 빈 우유병을 다른 곳으로 치우고, 벨을 눌러 “빈 병 내놓는 것을 잊으셨네요!”하며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본다.

다시 소액환은 배달되고 여인은 우체국으로 왔다가 이번에도 돈이 없다는 답을 듣고는 관리자에게 항의한다. 손님의 잘못도 부드럽게 처리하는 상식과 달리 관리자는 잔고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퉁명스레 면박을 준다. 여인은 이 우체국 도장이 찍힌 우편이 두 번째 온 것이라고 답하지만 문밖을 나서는 그녀의 등 뒤로 “사기꾼 같으니라고!” 하는 폭언이 들려온다.

자신이 꾸민 일로 여인이 누명까지 쓰는 일이 생기자 남자는 밖으로 쫓아나와 자신이 한 일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어이 없는 여자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다그치자 남자는 그저 보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무시하고 돌아서는 여자에게 남자는 “당신은 어제 저녁에 울었어요!”라는 말까지 하여 여자는 더 어이가 없어진다. 자신의 아파트 생활을 창문을 통해 훔쳐 보았다는 말을 듣고 여자는 “꺼져”라고 말하고 멀리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남자가 우유배달을 하러 갔을 때, 아파트 문이 열린다. 여자는 “왜 그랬느냐? 무얼 원하느냐?”라고 일방적으로 따지는데, 남자는 그저 사랑 때문이라고만 말한다. 그래서 여자가 “키스 또는 잠자는 것을 원하느냐?”라고 묻자 남자는 아니라고 답한다. 저녁 시간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대화는 끝난다. 남자의 신나는 마음을 우유배달 리어카를 신나게 끌고 달리는 모습으로 보여 준다.

둘의 만남을 통해 기억력 좋은 남자에게 지난 1년간 여자의 생활이 다시금 펼쳐진다. 여자가 이런저런 남자를 만나는 일, 다른 남자와 관계할 때 가스누출 신고를 대신해서 관계를 방해한 일 등이 펼쳐진다. 여자는 결론적으로 “그런 사랑은 없다!”라고 비웃는데 남자는 “있어요!”라고 답한다. 둘 다 사랑을 말하지만, 여자가 추구하는 육체적 사랑과 남자가 생각하는 정신적 사랑의 차이가 대화 속에서 드러난다.  

다음 장면에선 여자가 자신의 아파트로 남자를 데려오고 관계하려 하는데 남자가 뛰쳐나간다. 아파트로 돌아온 남자는 자신이 생각한 사랑과 여자가 말하는 사랑의 차이를 알고서는 동맥을 끊고 자살을 시도해 병원에 실려간다. 여자가 남자의 병문안을 가려 하지만 계속 거절당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병원에서 퇴원한 남자가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자가 찾아간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이제는 엿보지 않아요!’이다. 다소 난해하고 허무하게 영화는 끝난다.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의 결별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런저런 성 중독증 인구가 미국의 경우 3억의 인구 가운데 약 5%인 1천여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그 중에서 결혼한 배우자들의 외도는 가정 파탄이라는 문제를 일으킨다. 사회 지도자의 경우 대표적으로 미국 대통령조차 재직시에 불륜 관계를 맺었으니,‘외도 권하는 사회’도 아니고 참으로 못 말릴 일이다. 마음 한편으로는 성은 아름다운 것이고, 성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안타까운 마음 그지 없다.

단편적으로 성 중독은 어린 시절 사랑의 결핍이나 삶의 공허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전직 미국 대통령의 경우 새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도박하느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그 결핍을 육체적인 쾌락으로 메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골프 선수의 경우, 젊은 나이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마음의 공허함을 그저 육체적인 쾌락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십계명에서‘간음하지 말찌니라’(출 20:14) 한 것을 예수님은 한 발 더 나아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하신 것을 기억한다. 영화에서 육체적 사랑을 상징하는 여자가 남자의 손으로 유혹하는 장면과 남자가 그 손의 동맥을 끊어 자살하려 했던 장면이 인상적이다. 자기 몸을 해하는 것까지는 안할지라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녀 모두 성적인 잘못들을 회개했으면 좋겠다. 유명 골프 선수의 외도와 불륜을 손가락질하면서 지켜 보기보다는 내 마음과 내 몸으로 행한 잘못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