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초중고 시절 졸업식에서 꼭 부르게 되는 노래 가사이다. 하지만 짖궂은 후배들은 졸업을 하는 선배들에게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가사를 바꿔서 부르기도 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코딱지 한 사발을 선사합니다...” 그러면 또 졸업생들은 이에 질세라 후배들에게 우리는 졸업하니 너희는 학교에 남아서 더 많이 고생하라고 은근슬쩍 악담 아닌 악담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이렇게 못된 말을 주고받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물려준 책으로 열심히 공부하라고 부탁을 하고, 또 선배들은 이제 더 열심히 배워서 나라의 일꾼이 되어서 나중에 만날 것을 다짐하면서 결국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졸업식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서로에게 밀가루, 계란, 식용유 등을 퍼부으면서 누가 보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졸업식과는 거리가 멀어진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학교와 교복이라는 강압적인 권위로부터의 해방감을 누리는 것이라고 이해해 주던 모습들이 이제 급기야 알몸으로 졸업식 뒤풀이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러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게 된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에 의해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곳에서, 또 많은 학생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알몸 졸업식을 감행(?)함으로써 그동안 못 본 척하고 넘어가던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사회와 교육계도 이제는 더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경찰에서는 조사를 하여 가해자들을 색출할 것이라고 난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졸업식의 모습을 보는 시각도 여러 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졸업식 경험을 추억하면서 지금 보기에는 조금 좋지 않지만 그냥 놔두면 저절로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강요하여 인권을 무시한 엄연한 폭력이기 때문에 가해자를 찾아내어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리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따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행동의 바탕에는 학생들의 기초적인 사회의식과 윤리가 결여된 가정교육의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졸업식이 치러지는 이유가 아이들이 사회에서 겪고 있는 불만과 또 늘 입시위주의 교육의 폐해 속에서 그동안 눌려 있던 스트레스가 이런 식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도가 지나친 행동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군중심리에 의한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선배들이 했던 그대로 관행처럼 따라한 것뿐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잘잘못에 대한 확실한 가치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모욕감 내지는 수치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저 나이 어린 여자아이로 보이는(실제로 중학생이면 열 네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친구들의 머리 위에 토마토 케첩을 마구 뿌리며 어떻게 해서든지 가장 모욕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수치감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을 사회심리학적으로 굳이 설명한다면, 알몸을 드러내는 것이 사회 통념상, 또는 규범상으로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이를 보고 화를 내고 못마땅해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심리적으로 한참 성장기와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는 십대들이 자기 또래들과 함께 이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행사와도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신도 이제 졸업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십대는 그렇게 큰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직도 어린 아이 취급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십대들의 알몸 졸업식은 자신들이 이제 어느 정도는 성인이 된 것을 자축하는 행위로 이해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일종의 시위는 어른들 보기에는 마땅치 않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금지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강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꼭 해야 하는 의례처럼 자리를 잡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졸업식이 끝나고 옷을 벗는 것은 몇 불량한 학생들이 힘없는 아이들의 옷을 강제로 벗기는 것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벗고 같이 벗기는 것이다. 옷을 벗는다는 것이 단순히 벗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할 수 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입어야 했던 교복을 이제 밀가루나 계란으로 더럽히고, 아니면 조각조각 찢어서 결국 다 벗어버려야 학교로부터 해방되는 그런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알몸 졸업식은 자신들을 지옥과도 같은 학교생활을 하게끔 만들었던 기성세대와 학교와 사회의 권위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고 거부감의 표시인 것이다.

물론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오죽했으면 그러겠냐고 옹호를 하는 분위기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옥과도 같은 학교에서 늘 입시 위주의 공부만을 했으니 저런 식으로라도 해방감을 맛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일 것이다. 더더구나 그들의 행동을 나무라기 이전에 바로 그 알몸의 행진이 우리 기성세대들이 그들에게 심어놓은 열매임을 자각하고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밀가루를 뿌리고, 케첩을 친구의 머리에 붓고, 옷을 조각조각 찢고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 기성세대의 가치관, 도덕관, 신앙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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