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겨울은 정말로 길다. 가을의 조용하고 깊은 분위기를 느끼기도 전에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면서 순식간에 모든 것이 차디차게 얼어버리는 겨울이 시작되는 것이다. 10월 말이나 11월에 눈발이 날리면서 추위를 재촉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눈, 손발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꽁꽁 얼어버리는 것과 같은 추위는 몇 달이 지나도 끝날 줄을 모른다.

3월이 되어도 눈 더미는 산처럼 높이 동네 여기저기 쌓여 있으며 찬바람과 추위는 가실 줄 모른다. 그런 가운데서도 봄기운이 조금씩 느껴지지만 시카고의 겨울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기색이다. 아직도 모든 것이 잿빛처럼 희뿌옇기만 하고 한 번 얼어버린 세상은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몸만 추운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꽁꽁 얼어서 겨울이 정말 싫다는 투정이 저절로 나온다. 아마 시카고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부활절이 다가오는 4월로 들어서면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 듯이 갑자기 모든 것이 소생하기 시작한다. 다 죽어서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것같이 바싹 말랐던 나뭇가지의 끝마다 싹이 움트기 시작하고, 누렇던 잔디밭은 돋아나는 새싹으로 금세 온 사방을 푸르게 덮어버린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서 부활의 신비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모든 인생의 소망이며 다시 말해서 온 인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징적인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우리는 부활의 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살았던 그 삶 자체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참 부활은 예수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삶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바로 우리 안에서 ‘부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부활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성품과 그분의 형상이 나타나야 함을 말한다. 우리 믿는 자들을 통해서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악하고 불법이 성하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을 살아감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사랑의 실천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탄생이나 부활 못지않게 예수님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도록 노력하였다면, 지금처럼 세상이 교회를 향해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성도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낼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는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따라서 제자들도 처음에는 주님의 생애와 십자가의 고난, 그리고 부활하신 이후에도 주님의 뜻과 삶을 온전히 따라가지는 못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누가 네 이웃이냐고 물으신 그 가르침이 쉽게 이해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 모든 사회와 사람들에게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 어떤 사람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세리나 창기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그 당시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받았지만 사회의 지도자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축하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부활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죄와 악함과, 죽음의 권세까지도 이기신 주님의 위대한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서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불쌍한 잃은 영혼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헐고 다시금 화목케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고, 또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 부활을 통해서 세상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먼저 화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화목의 사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병들고 굶주리고 소외되어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을 위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고쳐 주어야 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모두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우리의 형제자매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부활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나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이기적인 신앙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내가 가진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참 부활의 삶이요 부활의 열매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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