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ychology in Movies

한국에서 어버이날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같은 날에 드리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일을 Mother’s Day로, 6월 셋째 주일을 Father’s Day로 나누어서 지킨다. 아버지의 날을 맞아 가족을 부양하느라 밖에서 일하면서 부대끼고, 집에 와서는 때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환영도 못 받고 이리저리 치이는 많은 아버지들의 모습을 새삼 생각하면서, 하루라도 격려를 보내드리고,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를 돌아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골라보았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When Did You Last See Your Father?
의문문으로 만든 길다란 제목이 사뭇 도전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평소에는 자주 접해 보지 못한 영국 영화이다. 아버지가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고,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집으로 돌아온다. 말기 환자인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를 돌보는 가족간의 관계가 잔잔하게 그려지는데, 특히 아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회상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아들이 성장하면서 겪어 왔던 아버지와의 심리적 갈등을 세심하게 그려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식된 입장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영화이다. 

자동차 경주를 보러 가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버지는 경주는 보지도 못하고 길 바닥에 돈을 버리게 생겼다고 조바심을 내는데,   지혜로운 엄마는 뒷자리에 앉은 어린 남매에게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하면서 짜증을 달래 준다. 하지만 아버지는 멀리서 첫 경주 시작 신호가 들리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줄지어 서 있는 다른 차들 옆으로 달려간다. 자신이 의사임을 나타내는 청진기를 흔들며 “비상! 비상!” 소리를 지르지만 사람들은 비난의 표정을 짓고 심지어 야유까지 하는 것을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어머니는 얼굴을 가린다. 회원 전용 입구에 가서도 자신은 의사이고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막무가내로 핑계를 대고 입장하던 아빠의 모습이 아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현재 아버지는 자신처럼 의사가 되어 안정된 생활을 지내기보다 아들이 가난한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 못마땅하다. 아들은 자신의 작품으로 상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책을 아직 읽어 보지 않았다. 게다가 두 사람의 성격 역시 대조적이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휘어잡고 늘 이끄는 스타일인데, 아들은 조용히 방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스타일이다.

아들은 십대 후반,  차를 운전할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와 떠났던 캠핑 겸 여행을 회상한다. 아버지는 신나 하지만 십대 청소년이 부모를 따라다니기 싫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들은 집에 돌아가자고 여행 내내 성화이고, 급기야 텐트에 밤새 물이 들어오는 일까지 겪고서는 아버지가 싫기만 하다. 여행 중에 아버지가 사고 날 일이 없는 백사장에서 아들에게 운전 연습을 할 기회를 주어 둘의 관계가 잠시 좋아진다. 다시 장면은 현재로 바뀌고 아들은 주차장에 있는 그때 그 자동차를 바라보며 추억을 더듬고, 실제 드라이브를 해보기도 한다.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는 결정적인 기억은 아버지 주변에는 늘 여인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인지라 잘은 몰라도 아버지가 외도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면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교차된다. 아버지의 밝은 성격은 분명 가족을 즐겁게 했지만, 어머니의 어두운 표정이 아버지의 이중생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들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들에게 둘째 부인, 즉 첩이 있었던 것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외국영화 속에 나오는 외도의 장면을 보노라니 ‘인생이 다들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와 가까웠던 여인을 만나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는지 확인까지 한다.  “아버지는 표현을 잘 안했지만 누구보다 너희 어머니와 너희 남매를 사랑했다”고 그녀는 대답한다. 비록 돌아가셨지만 새삼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부자지간의 화해 장면이라고나 할까?

 인간은 살면서 잘 잊기도 하지만 과거에 대한 많은,  아니 모든 기억들은 뇌의 어느 부분엔가 저장된다. 그런데 좋은 기억들만 떠오르면 좋을 텐데, 상처받은 기억, 잘못한 기억처럼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들이 오늘에까지 영향을 끼치곤 한다. 반면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31:34).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0:17) 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의 죄로 인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독생자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피 흘리게 하사 손수 먼저 화해하셨다.

과거에 대한 기억,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억들에 발목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낼 때 한걸음 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아버지 날을 맞아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이 영화처럼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살아계신 아버지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말이다. 살아계셔도 아버지를 진정으로 대하지 않으면 못 보는 것이요, 돌아가셨어도 얽혔던 관계의 실타래를 마음으로 풀 수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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