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뭔가 짜릿한 것을 찾아서 한 평생 온 세상을 돌아다닌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가졌던 직업이나 살아온 곳만 해도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다양했다. 이 사람의 직업을 보면 운전기사, 투우사, 사냥꾼, 종군기자, 낚시꾼, 권투선수, 사업가, 군인, 작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먼저 그는 스페인에서는 투우사로 활약했으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전선에서는 구급차 운전병으로 일했다. 그리스와 터키 전쟁터에서는 종군기자로 일을 했고, 아프리카에서는 사자와 코끼리를 사냥했으며, 쿠바에서는 군수공장을 경영하는 사업가로 수완을 발휘하며 틈틈이 바다낚시를 즐겼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특파원으로 일한 경력도 있다. 그는 또 파리와 스페인에서는 작가로 활동했고 역사적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여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 탄 비행기가 두 번 씩이나 땅에 떨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며, 세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고 네 번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195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62세 되던 해인 1961년 7월 미국 아이다호의 자기 집에서 자신이 늘 사용하던 사냥용 총으로 자신의 이마를 겨냥해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한 평생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짜릿할 정도의 흥분을 찾아 도전했던 사람이고, 또 그 모든 것을 누려 보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 후반에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게 되었고 더 이상의 기쁨과 흥분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미련도 없이 이 땅에서의 삶을 끝내 버린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이와 마찬가지로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그것에 매달리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게 되어 시들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잠시 잠깐 동안은 기쁜 일이 생겨서 웃음 짓는지 모르지만 이런 기쁜 일보다는 여러 모양으로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슬픔, 절망, 고난, 피곤함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것을 찾고 즐거운 일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똑같이 계속되는 일과 사람들 속에서 그냥 포기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힘들고 절망스러운 일들이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아예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우리들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우리들이 시무룩한 모습으로 한숨을 쉬면서 마지못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는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들의 미래에 소망하는 하늘나라에서만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도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성경적인 삶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우리들이 그런 기쁨의 삶을 살고 있느냐는 말이다. 아마도 우리 인생이 그만큼 힘이 들고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늘 인상을 쓰면서 살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힘들고 어렵고 피곤한 인생의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해야 기쁨과 즐거움으로, 아니 열정적인 삶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우리에게도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러한 기적을 바란다면 가장 먼저 우리들의 삶에 예수님이 정말 계시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믿는 예수, 성경에 나오는 예수가 아니라 내 삶과 내가 움직이고 살아 있는 그 현장에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있는데 예수님만 빠진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 모습을 돌아보아 혹시라도 예수님이 내 삶에 계시지 않다면 빨리 예수님을 내 삶으로 초청하여야 한다.

내가 주님을 바라고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 주님은 기쁜 마음으로 우리들의 요구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절망이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는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이다.

내가 속한 사회, 그리고 교회, 또 내 가정 속에도 분명히 여러 문제는 있다. 우리들 어떤 누구도 이런 어려움과 곤란함을 다 피해서 살아갈 수는 없다. 문제를 피해 다니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문제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시험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험 때문에 절망하고 포기한다. 헤밍웨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주님께 요청하고, 기도하면 다시 우리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주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찾으며 그 분의 기적을 믿는다면 우리들의 믿음대로 주님은 이루어 주실 것이다.
또한 우리들이 주님의 기적을 바란다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 필요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을 요구하실 때가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우리들은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을 존중하고 그 범주 안에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절망 가운데서 기적을 바란다면 우리 인생이 경험하는 좁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이성보다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기적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이 아주 조금, 혹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다. 주님의 풍성함으로 늘 채워 주시고, 전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또 이를 통해서 우리들이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힘을 주시는 그런 주님이시다. 우리 주님이 계신 곳에는 기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주님을 초청하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던지 주님과 함께 하며 내 필요와 간절함을 요청하며, 주님께 순종할 것을 결단한다면 우리들의 삶이 풍성함으로, 기쁨으로 가득 차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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