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ychology in Movies

미국은 나라가 크고 다양하다 보니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가지임을 보게 된다. 병원의 의사하면 하얀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걸고 다니는 장면이 연상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전문 의학 기술을 가진 선생님과 시키는 대로 따르는 학생 관계처럼 생각된다. 또, 병원에 간다는 것은 몸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니 고통이 우선 연상되고, 치료 과정도 그리 유쾌할 수는 없다. 그런데 “치유란 사람들 사이의 사랑스럽고 창의적이며 유머 넘치는 상호 소통”이라 정의를 내리고,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위계적이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이들이 광대 복장을 하고 풍선이며 공을 사용하는 등 치료 과정이 즐거움으로 가득 찬 병원이 있다.

1970년대 초 헌터 아담스(Hunter Adams)란 사람이 버지니아에서 시작한 Gesundheit Institute가 오늘 소개하는 영화 ‘패치 아담스(Patch Adams)’의 배경이다. 좀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병원을 시작하기 전에 주인공이 의사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제목에 나오는 ‘패치(Patch)’라는 단어는 구멍 난 곳을 덧입힌다는 뜻으로, 환자를 잘 돌보고 나아가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로 확대되어 헌터 아담스가 얻었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주인공 의사의 모습을 잘 연기하여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주인공이 자살 미수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중이다. 주인공이 상담을 받는데, 상담자는 환자와 눈을 마주 치지도 않고 그저 질문만 던지면서 내담자와 전혀 소통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은 다람쥐가 나타나 자신을 해친다는 환시 때문에 바로 옆에 붙은 화장실에도 못 가는 룸메이트에게 “도대체 다람쥐가 어디 있냐?”고 구박하는 대신, 어느 날 룸메이트와 함께 다람쥐를 쫓아내는 일을 돕는다. 총격전에 바주카포 발사, 침대를 뒤집어 엎어 참호로 쓰는 등 그야말로 한바탕 소동을 벌인 다음 화장실로 룸메이트를 들여보낸 주인공은 남을 돕는 일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기존의 제도권 의대 교육과는 달라 보인다. 한 번은 아이들 병실에 들어갔는데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그렇게 무거울 수 없다. 주인공이 광대인 양 코에 빨간 공을 끼우고, 머리에는 고무 장갑을 뒤집어 쓰고, 변기통 뚜껑을 발에 끼우고 춤추는 등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여 주자 어린 아이들이 마음을 연다. 식음을 전폐하고 치료를 거부하는 할머니 환자에게는 언젠가 그녀가 “누들이 가득 담긴 풀장에 빠져보고 싶다”고 말했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게 도와 준다. 이런 식의 돌봄이 늘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담당 간호사가 두 손 든 괴퍅한 남자 환자로부터 쫓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간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천사 복장을 하고 다시 나타나서 환자의 마음을 녹인다.

“치유란 사람들 사이의 사랑스럽고 창의적이며 유머 넘치는 상호 소통”이라는 정의대로 육신의 질병을 고칠 뿐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기술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마음이 만나는 인간 중심 치료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가 의술에다 광대 예술도 배워야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받아들인다 쳐도 주인공의 다른 여러 가지 생각들은 의대의 규칙과 충돌한다.
그 중 하나는 3학년이 되어서야 환자를 만날 수 있다는 규칙을 어기고 병원 복도를 지나다 간호사의 부탁을 받거나 혹은 자기 스스로 환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 좋아하는 주인공이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으리라. 그보다 더 큰 충돌은 치료비를 받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다.

자연 속에 빈 집을 얻은 그는 뜻을 같이하는 의대 동료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의사자격증 없이 진료 행위를 했다고 학교측은 퇴학을 명한다. 평소 학교가 이끄는 방향을 따르지 않고 부딪치는 엉뚱한 주인공이 늘 못마땅했지만 성적은 상위권이라 어떻게 못하던 학장이 칼을 빼든 것이다.
의사가 되어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은 주인공은 의학협회에 심사를 요청하고, 강당을 가득히 매운 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 재미있는 병원, 기쁨이 삶의 방식이 되고, 희망이 목표가 되는 의사상을 웅변한다. 동료들, 간호사들이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공이 광대 노릇하며 만났던 어린이 환자들과 그 부모들이 나타나 코에 빨간 공을 끼우는 모습에서 재판정 같은 무거운 분위기기 잠시 밝아진다.
심사위원들은 주인공의 규칙 위반은 인정하지만 열심히 공부한 점 등을 고려하여 감사하게도 퇴학을 면하게 해준다. 마침내 주인공이 학교를 졸업하는 날, 졸업식장에서 학위증을 수여받고 인사하는데 가운 안에 옷을 입지 않아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된다. 기존 제도권 교육과 방식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라고나 할까? 학교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다른 생각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영화를 인간 중심주의 의술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의 독특한 관점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주인공에게서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 문득 보인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마가복음 1:6). 세례 요한의 삶은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것 모두가 독특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30).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 예수님께로 모여든다는 말에 대한 그의 응답은 인기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알고 하나님을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보여준다.

일상을 부정하고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영화 속 주인공, 아니 현실 속의 패치 아담스처럼 보다 큰 가치를 지향하는 삶을 한 번쯤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www.patchadams.org에 들어가면 주인공이 자신의 이상을 펼쳤던 기관의 활동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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