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ychology in Movies

PK(목회자 자녀), MK(선교사 자녀)라고 영어 약어로 불리는 별칭 그룹들이 있다. 부모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큰 영향을 받는 그룹들로서 큰 축복이 이어지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그 짐이 너무 무거워 일탈로 이어지는 경우도 본다. 모든 일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쉽사리 왈가왈부할 수 없는 법, 그들의 축복을 시샘하지도 말고,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입장에 서 보면 어떨까?  

금주의 영화‘돌아온 탕녀(Preacher’s kid)’의 앞부분에는 주인공 PK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기도 하지만, 할머니 신자로부터 치마 길이나 이성과의 교제에 대해 지적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PK가 목회자인 아버지, 곧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 실패를 맛본 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처음 영화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목회자 자녀의 신앙적 갈등과 성장만을 다룬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Prodigal son)를 연상케 된다. 주인공이 딸이어서 ‘돌아온 탕녀(Prodigal daughter, 蕩女)’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 남부 조지아 주, 매스터 골프대회로 유명한 중소도시 어거스타의 한 흑인교회이다. 권사님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예배당 입구에서 어린 학생의 얼굴에서 화장을 지우지를 않나, 예배 후 성가대 반주자와 대화를 나누는 목사의 딸에게 이성과 대화를 나눈다고 잔소리를 하질 않나, 한국교회의 옛 모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 않은 숨막히는 분위기이다. 문득 나 역시 목회자로서 10대 딸 PK에게 가슴이 덜 파인 옷을 입어라, 치마는 좀 길었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던  일이 떠오른다. ‘나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구나!’ 동감하게 되니, 이 영화가 PK들의 갈등을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20대 초반의 PK는 주일에는 성가대 솔로, 주중에는 성경공부, 회의 등 교회 일로 시간을 보낸다. 주일 예배 후 영화 보러 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기회를 엿보는데 아버지에게 딱 걸려 예배당 의자에 버려진 주보를 정리한다. 딸은 물론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래서 어머니 없이 혼자 지내는 아버지를 위해 집에서는 식사 준비를 하고, 교회에서도 열심히 아버지 일을 돕는다.

한번은 딸이 목사 아버지에게 “나도 휴식이 필요해요!”라고  어렵게 말을 꺼낸다. 아버지로부터 돌아온 답은 “이번 리트릿에 가서 푹 쉬어라!” 였다. 딸은 교회로부터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리트릿에 가면 감당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사실 쉼이 아니라 일의 연장이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주인공이 사는 도시에 가스펠 순회 공연단이 온다. 공연 당일에도 교회 성경공부가 있어서 일찌감치 구경을 포기했는데, 마침 일정이 취소되어 주인공은 모처럼 해방의 기회를 맞는다. 가수로 성공한 남성 리드 싱어를 우연히 만나 따로 입장 티켓도 받고, 공연단의 뒷풀이에도 참여하여 즉석 오디션에 통과하기까지 한다. 리드 싱어가 묵고 있는 방까지 찾기에 혹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는데, 술 한 잔 마시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빠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가르쳤다!”면서 딸이 거절하지만, 교회 밖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가수의 말, 아니 그보다는 매력적인 이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만다.    

PK가 자신의 노래로 무대에 데뷔하고 음반을 내고 싶다는 꿈에 사로잡히면서 모범생으로만 커온 그녀의 인생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과년한 딸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봐 걱정하던 아버지는 딸이 귀가하자 그라운드 룰이 필요하다면서 훈계를 늘어놓는다. 아버지에게 늘 순종해온 딸이 “나는 이제 스무 살 넘은 성인이다.  집을 떠나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아버지는 지금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겁을 주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딸은 아버지와 몸싸움까지 벌인다.

주인공 딸은 집을 떠나 순회 공연단에 합류한다. 게다가 리드 싱어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그런데 여자 주연 대역으로 시작해 역할을 늘려 주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고향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친절하고 달콤했던 리드 싱어가 그녀를 무시하기도 하고 뭔가 달라진 느낌을 준다. 손찌검까지 당했을 때 여주인공이 얼른 깨우쳤어야 하는데 “다시는 안 그러겠다. 너 없이 무슨 성공을 하겠느냐? 새 음반은 너와 같이 부르자.” 등 사탕발림식의 거짓말에 넘어가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음반 내는 일을 도와 주겠다던 리드 싱어에게는 또 다른 여자친구가 있다. “이 곡은 너를 위해 만들었다”라고 주인공에게 했던 말을 다른 여성에게도 똑같이 하는 걸 여주인공이 듣게 된다. “이젠 더 이상 너와 살 수 없다!”고 한바탕 소동을 부리고 짐을 꾸려 나가긴 했지만, 사랑은 둘째치고 ‘그냥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 음악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에 남자를 떠나지 못한다. 주인공의 얼굴은 구타로 여기저기 멍들어 공연을 할 수도 없다. 그제서야 집 나가던 것을 말리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너무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미국 전역을 돌다 고향땅 근처로 돌아왔을 때 친구와 자신을 사랑했던 성가대 반주자가 공연을 보러 온다. 그 동안 모든 것이 잘 되어 무대에도 서고 데뷔 앨범도 준비한다는 소식을 보내온 주인공이 공연은커녕 무대 밖에서 멍든 얼굴로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라도 집에 돌아가자”고 친구들은 설득하지만, 주인공은 뉴욕에 가면 앨범 제작사를 소개해 준다는 남자 친구의 말을 여전히 믿고 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뉴욕에 왔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그간 공연의 주연을 맡았던 여성에게 앨범 제작을 소개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마침내 현실을 깨달은 주인공은 거짓말을 늘어놓는 남자를 뒤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시 당국으로부터 공로상을 받다 말고 저 멀리 버스에서 내리는 딸에게 달려간다. 포옹하는 아버지와 딸을 향해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누가복음 15:20 표준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누가복음 15:10 표준새번역).    

한 목회자 자녀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판 탕자의 비유를 잘 그려낸 영화이다.  “Daddy, Can I come back home?” 순회 공연 중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또 다른 탕자의 비유라 할 수 있겠다. 집 떠나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무엇보다 잘못을 다 용서하고 기쁨으로 맞아주시는 부모가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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