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손목시계의 배터리를 새것으로 바꾸기 위해서 작은 드라이버를 찾느라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시계 뒷면에 있는 나사를 빼려고 나사와 꼭 맞는 드라이버를 찾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충 비슷한 것으로 이것저것 맞춰 보았는데 나사와 맞지 않으면 전혀 돌아가지도 않았고 조금이라도 힘을 주었다가는 나사가 다 망가질 것 같아서 돌릴 수 없었다. 분명히 나사와 맞는 사이즈가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금방 찾지 못해서 다른것으로는 해봐도 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시계 나사와 꼭 맞는 것을 찾은 다음에야 열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 제 것과 꼭 맞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대한 분명한 목적,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선명하고도 확실한 용도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저마다의 특성, 재능을 주시고 사용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를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의 모습일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와서 죽 둘러보고 간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 봐야 이것저것을 지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혀를 몇 번 차주고 돌아서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우리들의 모습은 주님을 섬기는 모습도 아니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도 아니다.

하나님께는 분명히 귀하게 사용하고 요긴하게 쓰시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엄청난 능력이나 은사를 가진 사람, 아니면 신학교에 가서 많은 공부를 한 사역자들, 아니면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한 사람, 교회에 어려서부터 다니고 신앙 연조가 아주 깊은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 준다. 그런 사람보다는 자신을 깨끗이 구별하여 성결한 삶을 사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디모데 후서 2장에서 사도바울은 그릇을 비유하면서 어떤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지를 설명한다.

우리는 이 바울의 비유를 잘못 해석하여 천한 그릇이라도 그 목적이 있는 것이고, 이왕이면 금그릇처럼 사용되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은 교회 안에서 주의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진리를 왜곡하는 엉뚱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귀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고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지 아닌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나”라는 그릇을 쓸 만큼 깨끗한지 아니면 죄로 얼룩져서 더럽지 않은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다 사용하신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악한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이다.

애굽의 바로와 같은 사람,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넘긴 유다와 같은 사람, 본디오 빌라도, 이런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모습인가?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족함이 없는가? 이 모든 것을 결정할 책임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에게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 가룟 유다를 사용했지만 그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져야 했던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이제 인본주의가 가득 찬 세상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다. 종교 역시 이것이나 저것이나 결국 하나이고 말과 방법만 약간씩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더러움과 거짓이 팽배하고 진리가 왜곡된 세상 가운데서 우리들은 깨끗하게 우리 스스로를 간수해야 한다.

물론 우리들이 깨끗해지는 것이 우리의 어떤 노력이나 열심을 가지고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보혈로만 우리는 깨끗함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는 그 은혜를 우리가 사모하지 않고는, 은혜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다보면 금방 더러워진다. 맘에 욕심이 가득차고, 또 미움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나에게 적용해서 죄를 고백하고 깨끗함을 다시 받아야 한다. 이 일은 내가 해야 한다. 수술을 잘하는 것은 의사의 책임이지만 수술 후에 수술 부위를 잘 관리하고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잘 챙겨먹는 것은 환자의 책임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따라 귀한 그릇으로 사용되기를 원한다면 죄 가운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깨끗해져서 성도로서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다못해 우리가 물건 하나를 쓰면서도 좀 좋은 것이 있으면 아껴두고 따로 떼어 놓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가 깨끗해져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도록 구별되기를 바라실 것이다.

우리들이 세상과 구별되고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감으로 조금씩 더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저 하늘나라에서 뵙게 될 것이고 우리 역시 주님과 같은 거룩한 모습으로 완전하게 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좋고 꼭 맞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더러움으로부터, 잘못된 세상의 진리로부터, 그리고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조금씩 거룩하게 변화되어 성장해야 한다.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 우리들의 더러움들을 다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깨끗해지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선한 일에 사용하실 것이다. 우리들의 삶을 통해 더러워지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죄 가운데 머물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그릇들이다. 이제 이왕 하나님의 일에 사명 받은 자로 뽑혔다면 꼭 필요한 사람, 귀한 그릇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에 요긴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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