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 아니 젊은 사람뿐 아니라 한국의 초등학교 아이들의 말을 들어도 우리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 한국 방송이나 비디오만 봐도 분명히 한국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자기들끼리는 좋다고 웃거나, 아니면 무척이나 심각한데 왜 웃기고 왜 심각한지를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을  ‘쌤’이라 부르던지 아니면 ‘담탱이’라고 부른다. 선생님을 빨리 줄여서 ‘쌤’이 되는 것이고 담임선생을 ‘담탱이’로 비하해서 부르는 것이다. ‘구리다’는 말의 뜻을 냄새가 난다, 혹은 의심스럽다로 해석한다면 영락없이 옛날 사람일  것이다.

요즘은 ‘구리다’라는 말은 뭔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안 돼 보이고 영 아닐 때 쓰는 단어이다. 이처럼 요즘은 부모와 자녀간에, 그리고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교사와 학생 사이에 언어가 분리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모두 우리말을 쓰고 있지만, 서로 의미가 통하지 않거나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가 많아지고  같은 세대끼리는 당연히 통하는 단어가 다른 세대에게는 외국어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울 때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인격적인 관계 맺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부모 자식간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가정환경이나 능력이나 여건 등이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대화이다. 대화가 없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아서 갈등 속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부모, 자식만이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우리 이웃간에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불행해 진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나와 뭔가 말이 통하고, 서로를 부르고, 하나님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바로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정말로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늘 확인하며 살아가는 성도는 가장 복될 것이다. 날마다 즐겁고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새롭고 풍성하게 경험하여 행복을 느끼며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꽉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전처럼 아주 친밀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그만큼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실 때도 예수님은 영원한 생수를 말씀하시는데 사마리아 여자는 마시는 물만 생각하고 있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니고데모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것을 말씀하시는데 이 사람들은 땅의 것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엉뚱한 질문과 대답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커뮤니케이션,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지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말씀을 해석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철저하게 성령의 조명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들을 깨닫고 순종함으로 늘 새로워져야 하지 그렇지 않고 성경을 내 형편과 처지, 내 생각과 경험에 맞추어서 억지로 해석해 버리면 결국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따라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늘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말씀으로 우리들의 잘못과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전화를 하는데 전화에서 잡음이 많거나 통화 중에 끊어지면 전화선이 어디 잘못되지 않았는지 확인을 한다. 휴대전화가 안 되면 배터리가 나가지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정전이 되면 퓨즈박스로 간다. 이처럼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으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잘 통하고 있는지 이것 역시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확인하는가? 늘 기도가 잘 나오고, 찬송 가운데 살며, 예배 가운데 기쁨과 감격이 있는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일 내 삶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을 순간마다 더욱 깊이 깨닫고 있으며 하늘나라의 소망과 기대가 매일 새롭게 다가옴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들은 주님을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주님과 잘 통하는 사이인지,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명령대로 잘 섬기고 있는지를 늘 확인하며 살아가야 한다.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져 있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 기쁨으로 온전히 순종하며 날마다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순간 순간 체험함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며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다.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우리 역시 머지않아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명심하여 주님과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과 정말로 잘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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