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 목사

디모데전서 6:7-10; 17-19

현대는 경제시대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돈이요, 사람의 가치는 구매력으로 평가됩니다.
성경은 재물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될 수도 있고, 재물로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경제의 소극적 요소가 무엇입니까?
사람을 탐욕의 포로로 만듭니다(딤전 6:9).
재물 욕심이 커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흥부 놀부”도 그 중 하나입니다.
경제는 자기 위치를 망각하게 합니다.
어떤 부자가 추수한 곡식을 쌓아 놓고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9-21).
사실 부자는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합리적인 경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력이 그 자신의 위치를 망각케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망각했습니다.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님을 망각했습니다.
세상이 영원한 인생의 터전이 아님을 망각했습니다.
자신이 재물의 주인이 아니고 청지기임을 망각했습니다.
경제가 생명을 보장한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경제는 구원의 길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재력, 신분, 명예, 실력에 지성과 도덕성까지 두루 갖춘,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젊은이에게 예수님은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눅 18:22).
청년은 자신이 재물의 주인인 줄 알았으나, 실은 재물의 종이었습니다. 그 앞에 구원의 길이 열려 있었으나,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재물에 굴복하여 주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두 주인을 섬기는 곡예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경제의 적극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경제력은 신령한 가치를 발휘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경제는 하나님과 교통의 매체가 됩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기도와 구제로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도 잘 모르는, 그저 소박하게 믿는 이방인인 그를 하나님이 찾으셨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행 10:4).
그의 구제가 하나님과 교통의 길을 여는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경제는 믿는 자에게 사명수행의 도구가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행 2:44,45).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행 4:32).
경제력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경제력을 어떻게 쓰라고 가르칩니까?
주를 따르기 위해 쓰라고 가르칩니다.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온전해지려면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쓰라고 가르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선한 동기에서 밭을 팔아 바치려 했으나, 욕심이 생겨 진실을 저버린 결과 생명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책임감 있게 쓰라고 가르칩니다.
주인이 돌아오면 종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주님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경제력을 하늘에 쌓아 두라. 신령한 가치를 발휘케 하라. 경제력은 악의 뿌리가 될 수도 있지만, 좋은 생명의 터를 닦을 수도 있다. 내가 돌아올 때 어떤 보고서를 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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